"상체 37.9도 고열, 하체 피 끊긴듯 시린"…'롱 코로나'에 일상 파괴됐다
- 22-04-18
<'코로나19 감염 후유증'(롱코비드)에 고통받고 있는 김경훈씨(38)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났다. 2022.04.12./뉴스1 © News1 김정현 기자>
[롱 코비드]① 원인 모른채 1년 고통…병원선 "정상" 주변선 "꾀병" 시선
완치 이후 병원비만 2000만원…"정부 후유증 문제 인식, 건보 적용을"
"코로나19에 걸린 게 1년 전이에요. 이후 계속 37.8도 안팎의 열이 올라요. 다리는 하지정맥류로 걷는 것조차 힘들구요. 그나마 지금은 좀 나아진 거고, 3개월 정도는 누워만 있어야 했어요."
지난 12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김경훈씨(38)는 이날도 병원에 들렸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가 '코로나19 감염 장기 후유증'(롱 코비드) 치료를 위해 전국의 병원을 헤맨 지도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김씨처럼 코로나19 완치 이후에도 일정 기간 후유증이 남아있는 증상을 '롱 코비드'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감염 후 설명할 수 없는 적어도 하나의 증상의 후유증이 3개월 이내 발생해 최소 2개월간 지속되는 상태'라고 규정했지만 국내에는 아직 정립된 정의가 없다.
롱 코비드 증상이 덮친 이후 김씨는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언제쯤 고통에서 벗어나 '정상의 삶'을 되찾을지 알 수 없는 게 절망적이지만 '꾀병'으로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도 좌절하고 있다고 했다.
상체는 37.9도 내외의 미열이 1년째 떨어지지 않고 있다. 김씨는 이에 대해 '타는듯한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병원에서 측정한 김씨의 체열 사진은 상체에만 열이 몰려있었다.(김경훈씨 제공) © 뉴스1 |
◇김경훈씨 "1년째 체온이 37.9도에 머물러…전신에 증상"
김씨가 코로나19 확진 이후에도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그는 "지난해 4월7일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열이 떨어지지 않아 퇴원이 늦어졌다"며 "퇴원 뒤 5월에 잠깐 출근하긴 했는데 몸의 기운이 쫙 빠져서 걷는 것조차 힘들어져 결국 휴직을 한 상태"라고 말했다.
확진 이전까지 김씨는 가족들과 캠핑을 즐겨 다니며 텐트도 혼자 치고, 30~50㎏의 짐도 척척 들었다.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에서도 연장근무 1위를 여러 번 할 정도로 체력도 좋았다.
그러나 확진 이후 더 이상 김씨는 코로나 이전의 몸과 삶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상체는 37.9도 내외의 미열이 1년째 떨어지지 않고 있다. 김씨는 '타는듯한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또 손발 저림, 두통, 안압통, 불면증 등의 증상이 쉼 없이 그를 괴롭혔다. 실제로 병원에서 측정한 김씨의 체열 사진은 상체에만 열이 몰려있었다.
하체는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았으며 뼈마디가 시려 걷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여러 번 다리를 주물렀다. 방광에도 이상이 생겨 한 시간에 5번 화장실을 다녀온 일이 있다고도 했다.
김씨는 "36.5도 정상 체온 때의 컨디션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지금 롱코비드 환자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에 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는 분들이 있는데, 체온을 조절하는 시상하부에 문제가 생긴 거면 어떡하냐며 불안해하고들 있다"고 걱정했다.
◇검사·치료비로만 1년간 2000만원 지출…그런데 '상세불명'
김씨는 지난해 직장을 휴직한 이후, 후유증 치료를 위해 그간 이름난 대학병원, 한의원 등을 수없이 찾아다녔다.
신경과, 내과, 정형외과, 감염내과는 물론, 정신과까지 다양한 진료 과를 찾아다녔지만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그동안 여러 병원에 갔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제게 나타나는 증상들에 대해 '코로나 때문이다'라고 말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제가 먼저 코로나 때문에 이런 게 아니냐고 물어볼 때도 있었는데 '코로나랑 연관 없다'고 화부터 내는 의사도 있었죠."
그는 "의사들이 검사상 정상이라고 뜨니 외면하고, '상세불명'이라고만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일부 병원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정신과 진료를 권하기도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원인이라도 알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한약도 먹어보고 하면서 지금까지 쓴 병원비만 2000만원에 달한다. 지난주에도 한 대에 50만원짜리 주사를 맞았는데 큰 차도나 변화는 없는 상태"라고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6일 롱코비드 환자 오픈채팅방의 후유증 환자들이 온라인 미팅을 열고 고통을 호소했다. © 뉴스1 김정현 |
◇"'감기갖고 유난 떠냐' 반응에 상처…병원도 잘 몰라" 눈물
롱 코비드가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만큼, 김씨뿐 아니라 다른 롱 코비드 환자들 역시 병원과 주변의 냉대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롱 코비드 환자 모임에서 만난 40대 여성 A씨도 "자다 일어나면 맥박과 혈압이 60 아래로 떨어지고 잠에서 깨면 팔다리가 마비되는 등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는데도, 막상 병원에서는 공황장애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니 답답했다"며 "주변에서 '오미크론은 감기라던데 너만 유난떠는 거 아니냐'고도 하는데, 그런 말에 너무 상처를 받는다"고 울먹였다.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다는 B씨(28)도 "신경과에서 목 CT를 찍고, 머리 MRI도 찍었는데 이상이 없다고 하니, 아버지도 꾀병이 아니냐 정신력이 문제다 이렇게 말씀 하신다"며 "그런데 막상 제 몸 상태는 차라리 잠든 뒤 아침에 눈을 안 뜨고 싶을 정도"라고 호소했다.
익산에 사는 C씨(41)는 "다리에 뜨거운 물이 흐르는 느낌이 나 병원을 갔는데 어디에서는 하지불안증후군이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다발성신경증후군이라고 말이 다르더라"며 "저는 다른 심각한 분들에 비해 경증 수준인 것 같은데도, 원인도 제대로 파악 못한 증상에 치료비·통원비로 300만원이 들었다"며 부담이 컸다고 밝혔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환자 "인과성 인정받고 떳떳이 치료받길"…의료계 "질병코드 등록 필요"
이들은 정부가 하루빨리 코로나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을 인정하고 치료와 관리 체계를 마련해주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김씨도 "코로나 후유증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의 인과성을 인정하고, 건강보험도 적용될 수 있도록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연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환자들이 의사들에게 외면받지 않고 떳떳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호소했다.
롱코비드 환자 모임의 김모씨(44·여)는 "지금 환자들은 병원이 원인을 못 찾아서 검사만 한두개 과를 가는 게 아닌데, 가는 곳마다 검사를 하니 부담이 너무 크다"며 "(코로나 후유증 질병)코드를 좀 잡아줘서 의료보험을 적용해주든지, 의료비 지원을 해주든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에 사는 박모씨(40·여)는 "코로나 후유증 환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막상 관련 진료를 보는 큰 병원은 서울에만 몰려있다"며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검사나 치료를 받기 위해 지역별로 코로나 후유증 담당병원을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은 국내 14개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60세 미만 기저질환이 없는 확진자'를 포함한 약 1000명을 대상으로 확진 후 3~6개월째 나타나는 후유증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올해 하반기 중 해당 조사의 중간결과가 분석될 예정이다.
의료계에서도 롱 코비드에 대한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순영 가톨릭의대 명예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롱코비드에 대한 질병코드를 마련해 일선 의사들이 제대로 진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코로나 확진 이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증상이 가벼울지 몰라도 후유증을 인정해주는 의료 정책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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