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아버지·50대 아들의 비극…팬데믹 후 고독·고립 日사회문제로

[홀로 맞은 임종]일본, 지난해 고독·고립 대책실 출범

40~64세 고독사 비율 44%…시민단체 예산 660억 배정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릴 때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와 상의해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일본의 고독·고립 대책실을 이끄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장관은 지난해 11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메시지를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같은 해 2월 총리관저 내각관방 산하의 고독·고립 대책실을 신설했다.

이곳에서는 고독사·극단 선택·코로나 블루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대표적인 사회문제로 떠오른 고독·고립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중장년 히키코모리 61만명

세계 최고 고령화율을 보이는 일본은 사실 고독사 문제에 가장 먼저 주목한 나라다. 2010년엔 일본 공영방송 NHK의 '무연사회(無緣社會)' 다큐멘터리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무연사회란 '연이 없다'는 문자 그대로 홀로 살아가다 홀로 사망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고독사 대책은 독거 노인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장년 고독사의 위험신호를 감지해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일본소액단기보험협회가 발표한 '고독사 현황 리포트'에 따르면 2015년 4월~2020년 3월 일본에서 발생한 고독사 사례 4488건의 평균 연령은 남성 61.6세, 여성 60.7세로 65세 미만 비율이 전체의 절반 이상(52.0%)을 차지했다. 

이 중 연령이 불분명한 데이터를 제외한 4188건 가운데 29.3%가 40·50대였고, 65세 미만 고독사 사례 중 20·30대를 뺀 수치를 계산하면 전체의 약 44.2%가 40~64세 중장년층 고독사였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특히 20·30대에서 주로 나타났던 고독사 위험군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중장년층까지 확산해 우려가 높다.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 따르면 40~64세 은둔형 외톨이는 61만3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약 33%가 부모의 수입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른바 '8050(하치마루 고마루)'문제다. 80대 고령의 부모가 50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부양한다는 뜻이다.

8050은 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고독사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0년 5월 아이치현에서 87세 아버지와 55세 아들이 숨진 채로 함께 발견됐고, 2019년 11월 도쿄도 히가시무라야마시에서는 80대 어머니와 40대 아들이 함께 사망한 사건이 알려져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

◇'괴로워도 누구에게 말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15일 일본 정부 주최로 '고독·고립에 관한 포럼 테마 중장년층'이 열렸다. 교수와 의사, 사회복지사, 시민운동가 등이 모여 관련 대책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특히 타카기 카나(高城 佳那) 시즈오카 산업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시즈오카현 후지시의 '수면 캠페인'을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중장년 남성을 대상으로 한 이 캠페인은 환자가 일반 병원을 찾아 불면증을 호소하면 정신과 의사를 연결해 우울증을 조기에 예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죽고 싶은 기분이 들거나 괴로워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타카기 교수는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지적들을 수용해 비대면 상태에서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채팅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 고독고립대책실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맞춤형 핫라인(직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러분이 고민하는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의식주→주거→월세를 지불할 수 없다→소득이 없거나 감소' 보기를 차례로 누르면 주거 확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거주지의 자립상담지원기관을 연결해 준다.

같은 질문에 '질병·중독/사회와의 연결 회복→술이나 도박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고민을 요청하면 의존증 상담 거점 기관이나 보건소, 정신 보건 복지 센터를 안내한다. 

© News1 DB


일본 정부는 고독·고립 대책 비영리 시민단체(NPO) 지원금 약 63억엔(약 660억원)을 올해 추가 경정 예산과 내년도 예산안에 배정하는 등 관련 지원금도 확대했다.

또 기초단체(시·정·촌)를 중심으로 자치회·반상회 등 주민 안전망을 구축해 주민들이 수시로 고독사 고위험 가구를 방문해 안부를 묻고 보호하고 있다. 주민뿐 아니라 공무원, 우유·신문 배달 업체, 가스검침원 등과 함께 고독사를 예방한다.

◇편의점 등 23개 기업과 고위험 가구 확인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에서는 '지킴이 추진 프로젝트'을 통해 전기·가스·수도·신문·우유 판매점·택배 사업자·편의점 등 23개 기업과 함께 고위험 가구가 보내는 고독·고립 신호를 살피고 있다.

'지킴이 다이얼'을 운영해 고독사가 의심되는 주민 신고가 들어올 경우 365일 24시간 전화 대응,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현장에서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시가현 야스시에서는 '생활약자 발견 긴급연락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집세 체납이나 신문·우편물이 쌓이는 등 위험 신호가 나타나면 부동산 관리 회사가 거주자의 상황을 확인해 본인 동의 하에 시청에 연락, 일자리를 소개해 주거나 채무정리를 돕는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각 부처 행정의 기초 자료로 삼기 위해 전국적인 고독·고립 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결과는 오는 3월 발표할 예정이다. 민관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을 한국 정부가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에서 고립 문제는 중장년은 극단 선택, 노년층은 고독사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중장년까지 확대된 은둔형 외톨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지역사회가 활성화돼 있는 나라"라며 "마을 만들기의 차원에서 이웃과 고립된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의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김현섭 대표는 "일본은 고독사 문제의 대선배"라며 "현지 지방자치단체는 우리나라 지차체와 비교해 고독사 관련 지원 자체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어린 시절 일본에서 지냈다는 김 대표는 "가령 우리는 기초생활수급자라도 장례비만 지원하는데 일본의 경우 후처리 비용 지원금만 80만~100만원"이라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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