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혜 시인의 신앙시] 겨울 여행
- 21-12-16
이춘혜 시인
겨울 여행(旅行)
아련한 새벽 숲 사이
밤의 적막을 뚫고 비치던 그 여명—
아직 새벽 길은 어두워
궁창의 지다 남은 잔 별들로 길을 밝히면
그대 향해 가는 길이 어렴푸시 보인다
온천지가 눈으로 뒤 덮인 날
갈매기의 구슬픈 울음은
은빛 눈 구덩이에 빠져 들고
우리는 침구와 몇 개의 식사 도구 만으로
겨울의 꽁꽁 언 도시를 여행 하였다
빙판길에 희망(希望)의 군단을 이끌고
밀폐된 공간을 밀치고 다만, 자유의 마차 위에
자유의 깃발을 높이 들고 행군을 계속 했다
꿈결에 향기 그윽한 매화가 피어나듯
그리운 모습으로 피어나는
그대 향해 가는 멀고도 험한 길!
길은 길 위에 넘어지며
분계선 절벽까지 서로를 안내하다
스스로 목숨 추슬러 어둠 속에 희망처럼 빛나다
어두운 숲 속에서의 기진한 잠
우리는 꿈속에서도 숱한 시대의 외침과
타오르는 시대의 서광을 보았다
자유(自由) ! 그 빛나는 사상(思想)은 무엇인가?
먼 세월의 뒤안길에서 돼 새기며 지낸 별리의 아픔
금방 시들지 않고 목메는 그리움
내 목청껏 불러 보고픈 이름이여!
비껴 지나칠 수 없는 절망감에
차라리 원시인처럼 석굴 속에 살고 싶다
무분별한 상태에서 자유로웠던 우리
서로 흠모하며 안으로만 감추어진 사랑!
영겁의 세월을 다스리고 보듬어 온 조국의 모습
더는 고뇌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
멈출 줄 모르는 시간대에서
반세기가 훌쩍 넘은 빛 바랜 세월 속
사랑의 잔해만 앙상한 채 허물어진 마음들이여!
이상향을 그리는 갈증이 우울증처럼
환상의 외침 되어 다가선다
눈물겹도록 소중한 서로가 몽매에 그리다 지쳤는가?
그토록 애절한 생명의 울부짖음
천태만상의 눈물과 미소 뒤범벅되어
북녘 창가에 메아리 쳤건만
그대는 오랜 동면冬眠 에 취해 있는가?
이 몸도 가끔 만사가 노곤하여 김빠진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침 잠이 깨면 가슴을 헤집고 파고드는
피 멍울로 응어리진 단면들이 나를 괴롭힌다
내 핏 속에서 생명의 고동이 요동치기에
하와로부터 받은 원죄
죽음으로 향한 고뇌에 찬 모습!
우리는 여분의 죄 값을 치르려고
다시금 가인의 후예로 남는다
이 밤! 그대는 나의 안타까운 절규를 듣는가
내 의식의 한 꺼풀 속살을 열어
심중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싶은 자아!
꽃처럼 피었다 시들어만 가는 세월 속
서로가 굴욕을 참고 무너져 내릴 순 없을까
삶의 덫에 의해 삶 전부를 잃는다 해도
뼈저린 외로움은 한평생 그대 곁을 떠나지 않으리
그대여, 춥고 암담한 겨울 여행(旅行)은 끝내고
어둠의 굴레에서 탈피 해
미구에 다가올 찬연한 봄을 맞이하자
우리서로 얼싸안고 볼 비비며 입맞출 그 날은 언제일지
서로 한 몸을 이루는 날
백의민족의 순결 무구한 무궁화 꽃다발을 안겨 드리오리다
오! 진달래 붉게 피고 꿈이 아롱졌던
대한민국의 봄은 정녕 오려는가?
계절이 바람 따라 왔다가 다시 낙엽은 지는데---
아직은 춥고 어두운 새벽
미움보다는 그리움이 짙어 잊지 못할 그대를 불러본다
그대는 어느날
춥고 어두운 새벽 길을 쉼 없이 걸어와
광명한 아침 새봄이 왔다고 말하리
그날이 오면
폭포처럼 쏟아져 흘러 넘치는 기쁨
한치의 망설임 없이 얼싸 안고 흘리는 피 눈물
지난 고통의 날들도 비탄에 젖은 마음도
고뇌에찬 울부짖음도 묻어 두고
하나된 조국에서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다함 없는 열망에 찬 노래를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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