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오겜 속 슬럼타운"…구룡마을, 외국관광객 밀물에 '씁쓸'

서울 마지막 달동네 주민들, 재개발 지연 속 불편한 나날

K-열풍 한창인데…"한국에 대한 빈부차 편견 커질까 우려"

 

"날씨가 좋으면 주말마다 외국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다녀요."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만난 유귀범 구룡마을주민자치회장(74)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표정으로 마을 입구를 바라봤다.

 

유씨는 "서울의 강남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외국인 눈에 이색적으로 보이는 모양"이라며 "우리로서는 부끄럽지만 영화 '기생충'이 인기몰이를 한 뒤부터는 관광지가 돼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 한국 맞아?"…주말마다 구룡마을 관광 행렬

여름 태풍이 한차례 휩쓸고 간 구룡마을은 맑은 하늘 아래 주변의 마천루와 대조를 이뤘다. 빗물에 범람했던 마을 개천은 다시 잠잠해졌고 태풍에 무너진 나지막한 집들은 보수공사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나무로 지붕을 덧댄 판잣집과 고층 아파트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질적인 분위기를 냈다.

구룡마을은 최근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 화려한 도시의 이면을 비추는 이색 관광지로 인식되고 있다.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오징어게임'과 같은 문화 콘텐츠가 해외에서 메가 히트를 달성하면서 한국의 빈부격차를 눈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설명이다.

14일 오전 구룡마을 골목 모습. 22.9.14/뉴스1 © 뉴스1 이비슬 기자


유씨는 "날씨 좋은 날이면 젊은 외국인들이 데이트하듯 마을에 놀러 온다"고 말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주민도 "휴대전화를 촬영용 봉에 끼워서 2~3명씩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을 종종 본다"며 "동물을 보는 눈빛으로 구경하는 것이 느껴질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유튜브에서 구룡마을(Guryong village)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최근 마을을 탐방한 후기를 담은 해외 유튜버들의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상 속 구룡마을은 '서울 최악의(The WORST) 슬럼가', '한국 최대의 슬럼가 내부'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영상은 성인 한 명이 지나가기도 비좁은 골목 곳곳과 주민들의 판자촌 생활 모습을 자세히 담는다. 겨울을 대비해 창고에 연탄을 쌓아둔 풍경과 벽에 래커 스프레이로 지번을 표시한 풍경도 관심 있게 조명했다. 댓글에는 "이곳이 한국이야?", "인터넷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는 반응이 달리기도 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팝업 체험존 2021.9.24/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구룡마을이 韓 빈부격차 실상?…구경거리 전락 불편해"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게임과 같은 K-콘텐츠가 해외에서 대대적인 관심을 받은 뒤 구룡마을은 의도치 않게 한국의 실상을 대표하는 장소로 외신의 주목받았다. 기생충을 통해 한국의 반지하 주거 형태가 전 세계에 알려진 이후 2020년에는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방송이 마을을 집중 취재해 보도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은 외부의 시각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구룡마을에서 30년 넘게 거주한 마모씨(68·여)는 "한 달 전쯤 외국인 관광객들이 와서 여기저기 촬영하더니 간식이라고 빵을 주고 가더라" 며 "마을이 구경거리로 비치는 모습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이모씨(83)는 "일주일 전쯤에도 외국인 몇 명이 더듬더듬 한국말로 길을 물어보기도 하고 촬영도 해갔다"며 "보는 사람은 신기할지 몰라도 우리는 살아가는 곳인데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영화 '기생충' 흑백판 스틸(CJ엔터테인먼트 제공) 2020.2.17/뉴스1


구룡마을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며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부가 개포동 일대 무허가 주택을 철거한 뒤 이주한 주민들이 형성한 동네다. 현재 구룡마을 1~8지구에는 약 550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거주민들은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제공하는 임대 아파트로 임시 이주가 가능하다. 그러나 도시 개발 이후 재입주 조건이 높아질 것을 우려한 거주민들이 개발 예정인 마을 내 일부 지역 토지매입우선권을 요구한 상태다. 서울시와 마을 거주민 사이 합의가 미뤄지면서 구룡마을은 수년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남아있다.

구룡마을에서 30년간 거주한 한 주민은 "이곳에 사는 모습이 자랑스러운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한국이라는 나라를 우리 마을로 기억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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