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눈물…코로나 버티니 이번엔 식자재값 폭등

국제 밀값 전년比 75%↑…물가 더 오른다

대출만기 연장으로 버텼는데 금리인상에 눈덩이 빚

 

"조금만 더 버티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견뎠습니다. 이제 조금 나아지나 했는데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이 올라 죽을 맛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가 국내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각종 원가 비용이 오르면서 중소기업은 물론 자영업자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 인근에서 튀김전문점을 운영하는 이모씨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제한이라는 지옥과 같은 터널을 버텼더니 다시 터널에 갇힌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인건비를 아껴봐도 임대료에 전기·수도세, 배달 앱 수수료 등 각종 물가가 올라 남는 게 없다고 했다. 그는 "튀김가루 가격이 지난해보다 30%이상 올랐다"며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 내 삶을 다시 팍팍하게 만들 것이라곤 처음엔 상상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러-우크 전쟁의 나비효과 "영업제한 완화해도 삶은 팍팍"

15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해외곡물시장정보에 따르면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12일 기준 밀 선물의 가격은 톤당 405.55달러로 지난해 동일(231.39달러) 대비 75.3%(174.16달러) 급등했다. 옥수수, 대두 가격도 톤당 305.6달러와 613.7달러로 지난해 대비 각각 33.9%, 20.2% 올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3월 식량가격지수(FFPI)와 전달대비 12.6% 오른 159.3포인트를 기록해 1996년 지수도입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곡물 가격지수도 전달(145.3포인트)보다 17.1% 상승한 170.1포인트를 나타냈다.

식용윳값도 뛰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오뚜기 콩기름(900㎖)은 최저가 기준 이달 3580원으로 전년동월(1980원) 대비 81% 올랐다. 같은 기간 해표 식용유(900㎖)는 2900원에서 3900원으로 34% 뛰었다. 업소용 18ℓ짜리 식용유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2만원대였는데 지금은 5만원대로 2배 이상 올랐다. 

자영업자들은 식자재값 인상에 맞춰 소비자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토로한다. 단골을 많이 확보해야 이윤을 남기는 자영업 특성상 가격을 올리면 단골을 잃고 새 손님 발길마저 끊길 수 있어서다.

수개월치 원자재를 비축해두는 식품기업과도 사정이 다르다. 일부 자영업자는 곡물값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에 밀가루 사재기에 나서보지만 보관 장소 마련 및 관리가 쉽지 않아 비축에도 한계가 있다. 

글로벌 대표곡물인 밀 가격이 크게 오른 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밀 수출량의 약 30%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지난해 기준 0.8%로 1%가 채 안 된다. 일반적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3~6개월 뒤 국내 물가에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물가 인상 압박은 하반기에 더 가중될 전망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출이자…금리인상에 눈앞 캄캄

대출 이자도 부담이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자영업자 대출액은 8875000억원으로 전년대비 14.2% 늘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액은 9096000억원으로 900조원을 돌파했다.

대출 규모도 크다. 지난해 9월말 자영업자 1인당 대출규모는 3억5000억원으로 비자영업자(9000억원)의 4배에 달했다. 

은행권의 개인사업자(자영업자) 연체율(0.16%)은 0%대로 수치상으론 건전해 보인다. 이는 정부와 은행들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를 위해 대출 만기를 계속 미뤄줬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출 만기 연장조치가 곧 일몰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2020년 4월부터 시행한 대출 만기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는 네 차례 연장됐다. 현재기준 대출상환 만기는 올해 9월말까지다. 정부 지원조치가 끝나면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할 우려가 있다. 이른바 빚 폭탄이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채권·대출 금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존 0.50% 수준이었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8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1.25%까지 올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한 번에 두 단계(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시사하면서, 시장에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1.75%~2%까지 올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통계상 고금리 대출 비중도 늘었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예금은행이 취급하는 연금리 3% 미만의 중소기업 대출(개인사업자 포함) 비중은 22.9%로 6개월 전인 지난해 8월(64.0%)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줄었다. 반면 4~5%대는 6개월 전 6.9%에서 올해 2월 18.4%로 뛰었다.

자영업자의 대출 부실 조짐도 가시화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금융부채를 보유한 자영업가구 중 적자가구는 약 78만 가구로 추정된다. 적자가구는 자영업가구의 소득에서 필수지출과 대출원리금상환액을 차감한 값이 마이너스(–)인 가구다. 이들의 금융부채는 177조원으로 전체의 16.7%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은은 자영업자 매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대출 만기가 일괄 연장되면 올해 적자 가구의 금융부채 잔액은 195조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8조원(10.2%)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尹정부 인수위 자영업자 대책은 '배드뱅크'…숙제 산적

새 정부는 자영업자 대출 관련 잠재적 부실을 관리하는 방안으로 '배드뱅크'를 검토하고 있다. 배드뱅크란 부실자산 및 채권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관리·처리하는 기관을 말한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분과별 업무보고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소상공인진흥공단·정부·은행이 공동출자하는 배드뱅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자영업자 소득이 단기간에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장기적이고 구조적 방식을 통해 이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으로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안타깝게도 6개월 연장 만기는 6개월 시한부 선고"라면서 "앞으로 미국발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 우리도 물가 상승과 함께 금리 인상에 대한 압박을 받고 이자 비용이 늘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대 정부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대란 등 각종 금융위기 상황에서 배드뱅크를 활용했다. 

다만 소상공인·자영업자로 한정하는 배드뱅크 제도가 일종의 특혜가 될 수 있다는 반발을 풀어내야만 해 도입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홍운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부원장은 "배드뱅크는 김대중 정부 이후 계속 만들어져 왔지만 기존에는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한 부실채권 정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이번 처럼 질병에 의한 재난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개별 사업자 지원에 따른 사회적 우려를 불식시키기 의해서는 지원대상과 지원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 부원장은 "코로나 사태는 개인의 귀책사유가 아닌 전 세계적인 재난이었던 만큼 자영업자들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현실에 입각한 지원범위와 손실보전율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뉴스포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