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 안좋아도 투자는 해야…형님·아우에게 손벌리는 대기업들

'고금리' 발행시장 대신 계열사서 차입…재무건전성 높이고 비용부담 덜어

계열사 금융거래는 단기 처방 불과…"결국 수익성 개선 담보돼야"

 

주요 대기업들이 투자금 확보, 재무 건전성 강화를 위해 계열사에 손을 내밀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더불어 고금리 여파까지 지속되는 탓에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계열사 간 금융 거래를 통해 부담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034220)는 LG전자(066570)로부터 1조원 규모의 차입을 결정했다. LG전자는 LG디스플레이 지분 37.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수요 악화와 경기 둔화로 LG디스플레이의 지난해 영업손실만 2조85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2분기부터 적자가 계속되자 자금 수혈을 통해 숨통 틔우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기업 그룹에서 '형님'격인 모회사로부터 유동성 수혈을 받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사모채를 통해 337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지만 이달 들어 자금시장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가 이어지면서 우량 회사채 발행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무상황이 좋지 않는 LG디스플레이에 자금을 수혈한 것은 그룹 차원에서 더이상 '손을 놓고 있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와 반대로 삼성디스플레이는 모회사인 삼성전자(005930)에 지난달 20조원을 빌려줬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혹한기' 속에서 미래 수요에 대비한 반도체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 재원 확보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가 자회사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빌린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주력 고객사인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 14' 시리즈 효과로 지난해 6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삼성전자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향후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여유 현금이 생기면 차입금을 조기 상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도 계열사 간 금융 거래에 나섰다. SK온은 지난해 12월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2조원의 유상증자를 받아 투자 재원을 마련했다.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사업에 승부수를 던지면서 SK온은 이번에 확보되는 자금으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 확장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에 주력하고 있는 SK온은 생산기지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대규모 자금을 은행권이 아닌 계열사에서 빌리는 사례가 늘어난 건 투자뿐 아니라 재무건전성을 유지할 필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계열사간 차입 거래는 시장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이뤄져 이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차입이나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수혈은 향후 그룹 전체에 잠재적인 유동성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경영 판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자금 조달은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계열사의 수익성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조달 비용 등을 감안하면 유보금이나 회사채 발행보다는 자회사나 모회사를 통해 융통하는 게 효율적"이라면서도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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