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경찰청사람들]꽁꽁 숨어있던 100억대 사기범 "카페로 걸어들어왔다"

전세사기 일당 73명 검거한 양천서 김현자 경위…"집에도 거의 못 갔죠"
"한 사람도 억울한 사람 없어야…꼼꼼한 수사 계속 할 것"

 

 #. 한 달째 수사를 이어갔지만 주범의 행방은 묘연했다. 주범이 찍힌 CC(폐쇄회로)TV의 흔적을 쫓던 중 주범이 서울 구로구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때부터는 머리가 아닌 '발'의 시간이다. 구로구 카페를 이 잡듯이 뒤졌다. 며칠이 흘렀을까. 한 카페에서 탐문 수사를 이어가던 중 카페 문이 열리고 거짓말처럼 주범 A씨가 걸어들어왔다. 그것도 일당 10여명과 함께였다. 


서울 양천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김현자 경위(32)는 100억원대 전세대출 사기 일당을 검거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팀원들과 전세대출 사기 일당 검거 공로를 인정받아 특진했다.

하지만 A씨를 곧바로 체포하지 않았다. 공범들을 더 확인하고 더욱 확실한 검거를 위해 '기다림'을 선택했다. 

이후 5~6명이 팀을 이뤄 3일간 A씨가 머무는 한 호텔 근처에서 끝 모를 잠복근무를 이어갔다. A씨와 중간책 B씨는 잠복근무 마지막날 검거됐다.

전세대출 사기 일당은 치밀하게 역할 분담을 해 허위 임대인, 허위 임차인을 내세워 위조된 서류를 들고 다니면서 은행에서 전세자금을 쉽게 대출받았다. 은행의 전화 실사에 대비해 공유 오피스를 빌려 가짜 사무실을 만들기도 했다. 허술한 제도를 악용한 범죄여서 은행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100억원대 전세대출 사기 일당 73명 검거…14명 구속 '치밀한 역할 분배'

"처음에는 전세대출 사기 건수와 액수를 많아야 몇 건에 몇억원 정도로 생각했는데 수사가 진행되면서 45건에 100억원대까지 늘어나 매우 놀랐습니다"

김 경위는 지금까지 허위 임대차계약서로 은행에서 전세대출금 약100억원을 편취한 일당 73명(구속 14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지난 2021년 1월부터 작년 10월까지 허위 임대인과 임차인을 모집하고 전세계약서와 대출 관련 서류를 위조해 시중은행에서 전세대출금을 받아 편취했다. 일당은 총 45회에 걸쳐 약100억원을 편취했다.

이들 일당의 범행은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이뤄졌다. 범행을 지시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역할인 총책, 총책의 지시를 받아 허위 전세 계약 등 범행 전반을 총괄하는 중간책, 실장, 모집책, 위조책, 환전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김 경위는 총책과 중간책을 검거한 순간이 이번 수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작년 10월 총책 A씨가 묵던 호텔 지하 1층에서 잠복근무를 이어가던 중 자신의 차로 걸어오는 A씨를 발견한 후 바로 검거했다. 약간의 저항이 있었지만 6명의 경찰을 본 A씨는 곧바로 순순히 검거에 응했다. 같은 호텔에 묵던 중간책 B씨도 별다른 저항 없이 호텔방에서 검거됐다.

김 경위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이어가면서 이렇게 은행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 가능한가 의구심이 들었고, 점점 사례가 늘어나 100억원대까지 금액이 는 것을 보고 더 놀라웠다"며 "총책과 중간책을 먼저 잡고 나서 확보한 자료인 허위 임대차 장부와 일일이 대조하면서 수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일당은 현재까지 14명이 구속됐다. 김 경위는 "총책, 중간책을 포함해 허위 임차인과 허위 임대인, 위조책 등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사람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서울 한 은행의 대출창구 모습. 2022.3.31/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허술한 대출제도가 쉬운 범행 만들어…실제 세입자 피해 우려

김 경위는 이처럼 대담한 범죄가 조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배경으로 허술한 전세대출 제도를 꼽았다. 일당은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보증하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전세자금 대출이 임차인의 소득 증빙 관련 서류와 전세계약서만 있으면 실행된다는 점을 노렸다.

김 경위는 "전세 대출금의 80% 정도를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보증을 해 줘서 은행 입장에서도 안심하고 있었다"며 "이런 배경에서 형식적인 서류 심사가 이뤄졌고 위조한 서류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거 같다"고 지적했다.

황당하게도 잡힌 총책 A씨도 허술한 제도가 바뀌지 않은 점이 범행을 계속 하게 만들었다고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고 한다.

김 경위는 "앞으로는 1차적으로 은행에서 먼저 관련 서류와 전세계약서를 더 꼼꼼하게 살펴보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이런 사기 사건이 없어질 거 같다"고 제언했다.

이범 범행에서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실제로 집에서 살고 있는 세입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실 세입자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의 허위 임대인에게 전세금을 줬는데, 전세 기간이 끝나면 이들 허위 임대인들이 전세금을 돌려 줄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김 경위는 "허위 임대인들은 대부분이 신용점수가 매우 낮은 깡통 집주인으로 보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전세 만료 기간이 다가왔을 때 실제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못 돌려받을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일당 계속 추적 중…"한 사람을 수사하더라도 억울한 사람 없게"

현재 경찰은 전세대출 사기 일당의 나머지 공범들을 잡기 위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김 경위의 신념은 '한 사람을 수사하더라도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자'다. 이런 신념에서 김 경위는 이번 전세대출 사기 사건도 진술과 자료 등을 여러 번 확인하는 등 꼼꼼하게 살피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김 경위는 "내가 혹시라도 잘못 수사해서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임하고 있다"며 "수사를 꼼꼼하게 해 여러 범죄를 예방하고 경각심도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김 경위는 지난 2013년 대학교 2학년때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활동적인 성격,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캐릭터를 향한 동경 등이 김 경위를 현재 자리에 있게 했다.

김 경위는 이번 수사가 절정에 다다랐던 작년 11월과 12월에는 거의 집에도 못 들어가면서 범인 검거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피해 금액을 보면서 의지를 다잡았다. 김 경위는 함께 검거에 나섰던 팀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뉴스포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