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석을 2년 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인터뷰에서 만난 적이 있다. 캐릭터에 몰입한 탓일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무게감이 인터뷰의 분위기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원래 이렇게 어둡고 무서운 사람인가' 하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당시 김윤석의 지인들은 그를 '재밌는 사람'이라 칭했다. 대체 어떤 게 진짜일지 궁금했다.
최근 '극비수사' 개봉을 앞두고 김윤석을 만나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진중하고 어두운 작품을 할 때는 그 느낌을 따라간다고 했다. "생존에 대한 이야기니까 웃기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한 김윤석은 '완득이' 때는 재밌게 인터뷰를 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극비수사'는 유괴된 아이를 찾아내는 형사와 도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마디로 해피엔딩. 덕분에 김윤석 역시 한결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사람이 마냥 밝을 수는 없죠.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끝까지 치달아가는 작품도 나와줘야만 새로운 걸 발견하는 거니까요.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햇볕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거죠. 두 가지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게 자연이고 삶이기 때문에. 속은 다 썩어가는데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 가식이고 가증스러운 거 아닐까요? 밝은 거만 강요하는 건 독재나 다름 없어요."
김윤석은 사람들이 어두운 모습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런 역할을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어느 정도 파워를 가진 배우가 그런 작품에 합류해서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지만 부딪혀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유독 어두운 역할들이 부각된 것 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모든 건 제 안에 있는 거에요. '즐거운 인생', '완득이'처럼 가볍고 따뜻한 것도 다 해봤죠. 강렬함을 많이 기억 하다보니 그쪽으로 치중되는 게 있어요. 배우가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니까 좋은 거만 하려고 하면 안되요. 언제나 사랑스럽고 인자한 역할을 하면, 그게 고갈되면 어쩌죠? 가짜 미소가 나오는 거에요. 그건 영화가 아니라 광고죠."
, 김윤석은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실어 "아프지만 속살을 뒤집어까서 들어가보고, 삶에 대한 표현을 다양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화가가 어떻게 정물화만 그리겠냐. 추상화도 그리고, 피카소처럼 눈이 하나만 달린 그림도 나와야 한다"며 "그런 다양성에 대한 시각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딸을 둔 아빠인 김윤석은 '극비수사'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아이를 잃고 끝났다면 아마 너무 힘들어 출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극중 두 남자가 직업은 도사고 형사지만, 한없이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점에도 끌렸단다.
김윤석은 '극비수사'에서 아들과 같은 반인 소녀가 유괴되자, 그를 찾아나서는 형사 공길용을 연기한다. 모두가 범인에 집중하는 동안, 공길용은 유괴된 아이의 안위에 신경을 쏟는다. 무조건 아이를 부모 품에 되돌려주겠다는 그의 진심이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기술시사와 언론시사를 통해 작품을 두 번 봤다는 그는 관객들이 몰입해서 보는 기운이 느껴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영화가 좋았다"는 기자의 말에 김윤석은 "그런 건 기사에 써달라"며 웃어보였다. 정말이지 그는 작품에서도, 일상에서도 '가짜 미소'가 없는 사람임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