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 담임)
꿈을 통해 영적 정체성을 회복하라
한 생명체로 태어난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 울음을 터뜨리고 나오면서부터 기쁨ㆍ노여움ㆍ슬픔과 즐거움 즉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세상을 위해 꿈을 꾸는 비전을 갖게 된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꿈꾸던 세상이나 꿈을 삶의
배경과 환경에 따라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삶에 대한 좌절과 절망이 갈등이라는 도로 위에
계속 머물게 되면 나보다 더 나은 사람과 지나친 비교를 하고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those who were born with silver spoons in their mouths)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돈(money)만이 삶의 행복과
성공을 가져준다고 보는 시각에서 볼때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돈이 가져다 주는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도 너무나 많기에 돈이 인간에게 절대적인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돈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수단의 매개체인데 그것이 부ㆍ권력ㆍ힘을 지배하는 실체로 등장하게 되면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오늘의 대한민국 정부에서 실감 있게 느끼고 있으며,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돈 때문에 사람들과 관계가 어그러지게 된다.
돈만이 성공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라
믿게 되면 그렇게 믿는 사람은 탐욕을 가지게 되고 누군가 받아야 할 복(福)을 가로채는 원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경에 보면 팥죽 한 그릇에
형에서의 장자권을 갈취하고 아버지로부터 장자가 받아야 할 축복까지 받은 야곱이 있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한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을 알고 있던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성급함에 의해 작은 아들을 편애하여 큰
아들 에서가 받을 축복권을 받게 하고 야곱에게 자신의 오라비가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게 한다.
그래서
야곱은 무작정 하란으로 향해 가는데 첫날 두려움 가운데 들판에서 하룻밤을 지낸 곳이 오늘날의 벧엘이다. 그는
그곳에서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닥다리와 그것을 통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천사들과 사닥다리 위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인 축복의 계약을 받는다. 그것들은 ‘땅, 씨의 축복, 안전과
보호’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들은 야곱은 하나님께 자신의
축복을 다시 확인하고 하나님께 조건적인 계약을 한다.
그 후 야곱은 하란에서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브엘세바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형 에서를 만나야 했었다.
하지만 그는 형 에서를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가족들과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먼저 보내고 얍복 나루에서 하룻밤을 홀로 지낸다.
그 이유는 자신의 영적인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다,
속인다’라는
의미로 그는 에서의 장자권을 갈취하였고 삼촌 라반을 속여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얍복 나루에서 어떤 사람과 밤새 씨름을 하다 이기는 꿈을 꾸게 된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32:28절에 기록돼 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것은
야곱이 부를 통해 세상적인 성공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려고 한 것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만들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가 영적인 정체성의 현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것처럼 자신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이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