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가을의
전령사
‘누구에게나
알려주는 임무를 맡은 사람’을 전령사라 한다. 꽃망울을 터뜨려
꽃이 피면 봄을 알려주고, 코스모스가 살랑거리면 가을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어느덧
여름이 지나가고 완연한 가을로 접어 들었나 보다. 주변에는 쌕쌕이며 여치 그리고 귀뚜라미가 울어대며
지루한 여름의 끝과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 들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야말로 가을의 전령사들이 고독한 자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에 바쁘다.
귀뚜라미가 울면 ‘게으른 아낙이 놀란다’는 말이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여름철에 부지런히 길쌈을 해야 할 아낙네가 실컷 게으름을 피우다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아차’하고 놀라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래서 옛날 사람들은 귀뚜라미를 지루한 여름철의 끝과 시원한
가을철의 시작을 알리는 ‘가을의 전령사’라며 반가운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의 전령사로는 낙엽을 빼놓을 수 없다. 낙엽은 따뜻했던 날씨가 차가워질 무렵부터
잎이 말라 색이 변하면서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단풍도 수명이 다해 떨어지면 낙엽이 된다. 낙엽은 나무가 월동 준비를 위해 하는 첫 단계다. 나무가 낙엽을
들어내는 것은 나무가 물을 흡수하는 기능이 약해져 잎을 통해 배출하는 수분을 차단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다.
가을과
겨울에는 땅으로부터 흡수할 수분이 적어 잎으로 가는 수분을 나무 스스로가 차단함으로써 잎이 말라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 나무에 매달려 잎의 색이 변하여 울긋불긋해질 때면 단풍이 되고 이 요란스럽게 변해버린 단풍이 땅에 떨어지면
그때는 낙엽이라 불린다. 그러기에 낙엽은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 ‘자연의
얼굴’이라 하겠다.
구약성경에는
‘욥’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의 형편이 마치 땅에 떨어져 뒹굴며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욥기서 13:25). 하루 아침에 10남매 자녀들과 그 많고 많았던 재산을
잃고 알거지가 된다.
욥은 당시 동방에서는 제일 큰 알부자로 이름났지만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돼 자신의
모습이 마치 나뭇잎처럼 떨어져 버린 가련한 신세가 됐으니 그렇게 한탄할 만하다.
그러기에 욥은 자기의
처참한 신세를 마치 떨어진 낙엽과도 같이 생각하면서 삶에 대한 의욕이 자기도 모르게 소멸하였을 뿐 아니라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폐기된 인생이요, 끝장난 인생으로 이해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고 믿었기 때문이다.
욥처럼
우리도 때때로 나뭇잎처럼 떨어질 때로 떨어져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런 위기가 없었다면
다시 비약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땅에 떨어진 낙엽과 같이 쓸어버리고 싶은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역경 역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봄이 되면 새로운 싹들이 움트는 것처럼 바로 이처럼 새롭게 움트는 싹을 위해 고난과 역경이 도리어 낙엽이 되고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살아갈 동안 때에 따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예상치 않았던 벼랑에 떨어져 낙엽의 신세에 처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일수록 가을의 의미를 되짚어 보며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일깨우길 바란다. 그러면서 설사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또다시 일어나 끊임없이 발돋움해 나가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