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숭혁교수(계명대학교 화학공학과)
입양, 그리고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현관앞에 무언가 놓여 있었다. 애들 장난인가 했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앞뒤가 가지런한 깻잎이 비닐 봉투 안에들어 있었다. 선물이라기에는 값은 물론 양도 너무 적어 보였지만, 아무튼처형에게 건네주었다.
처형은 깻잎 비닐 봉투를 받고 “또 보내셨네”하며 반색을 했다. 그녀에게 무어냐고 묻기가 어색해 마눌님에게 물었다. “깻잎? 언니 약값이래요.”
한인상당수가 자녀교육 때문에 미국에 이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0여년 전 어려운 이민생활을시작해 이제 시애틀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처형네도 마찬가지이다.
제일 큰 자랑거리가 자식농사이다.
한인신문에도 소개된 큰 딸은 동부 명문대학을 졸업해 뉴욕 법률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난 ‘양키 아들’을 키우기는 만만치 않았다.
녀석은 머리가 커져가면서 가슴 속에 무언가응어리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자기가 흰색이 아니라 노란색 피부의 동양인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부모에대한 반항심도 깊어만 갔다.
사춘기라그러려니 했으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무조건 서양 가정으로 입양시켜 달라고 졸라댔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이 말을 듣지 않으면 ‘호적에서 판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반대로 자식이 스스로 호적을 파겠다고 협박하는경우는 없을 것이다. 당시 녀석을 아끼던 테니스 코치가 한 분 있었는데 녀석은 그 코치 집으로 입양하게해 달라고 떼를 썼다. 그 코치가 입양아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녀석이 어떻게 알았나 보다. 어쨌거나 그 코치는 지금 한국인 입양아를 자녀로 키우고 있단다.
고심끝에 처형은 테니스 코치를 개인적으로 만났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녀석과 대화를 통해 해법을찾겠다고 위로했고, 처형은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언제일지 모르지만 입양아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코치는 녀석에게 왜 네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며, 왜 가족이 너를사랑하는지를 꾸준히 일깨워 주었다. 다행히도 이제 자신과 부모의 한국인 정체성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해 현재 백악관에서 인턴을 마친 뒤 서부 명문대학 법대를 수료하고 있다.
처형은개인 봉사활동 등을 통해 테니스 코치와 약속을 지켜왔고, 몇 년 전부터 시애틀 한미입양가족협회 회장으로활동하고 있다.
그러던어느 날 미국인 양 부모로부터 상담을 부탁 받았단다. 한인 입양아가 도무지 음식에 적응 못해 고민이라는말을 듣고 깻잎을 심어 향기라도 맡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대답해줬다.
뜻밖에도 이것이 실제로 좋은치료법이 됐고, 그 뒤부터 미국인 부모는 뜰에 심은 깻잎을 종종 보내온다고 한다. 깻잎 한 봉투가 무슨 뇌물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약값이었다고 하자 처형이 정색을 한다(처형은 이민 전 한국에서 약사였다). 물론 뇌물도 아니지만 또한 약값도아니라며, 단지 봉사는 봉사일 뿐이란다.
시애틀에는한인 입양인 출신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로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이 있다. 신 의원은 처형에게 개인적으로 정계를 은퇴하면 한인 입양인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했단다.
이글을 마치기 전에 유튜브를 통해 음악 하나를 찾아본다. 시애틀에서 활동중인 입양인 출신 래퍼 가수인고우(Goweㆍ한국명 김성훈)가 부르는 ‘I Wonder(나는 알고 싶어요)’이다. 그의 이름 Gowe는 서양에 선물로 주어진 동양인이라는 의미의 ‘Gifted on West East’의 약자란다.
여기에서 그는 “아주특별한 분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라는 한글 자막과 함께 입양아로 살아 왔던 그의 특별한 삶을 영어 랩으로 노래한다. 18살 나이에 낳아주시고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사모곡이다.
지금 내 귀에 영어 가사 중에 우리말 ‘엄마’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그의 노래가 들린다. “알고 싶습니다. 그대는 웃고 있나요. 어떨 때는 보고 싶고 당신의 품이 그립습니다.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던당신. 한 번도 감사하다고 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엄마’, ‘엄마’, 나의 ‘엄마’. 항상 저의 마음 속에 담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