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책 중 넌센스 퀴즈 하나를 만들어 보았다.
‘모든 인간은 이것을 먹고 자란다. 인간 모두 공평하게 먹으며, 어느 누구도 절대로 먹지 않을 수는 없다. 또한 인간들은 처음에는 이것을 먹으면서 대부분 즐거워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이 먹으면 죽는다. 이것은 무엇일까? ’
해외여행 초기엔 대개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시차 때문이다. 지리적 시차도 있지만 부차적으로 말하자면 생리적 시차가 이유 중 하나다.
우리 위 시계는 생리적으로 식사 시간에 맞춰 위산을 분출하고, 이에 배가 고파 눈이 절로 떠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생리적 시차는 나의 경우 일주일 정도면 대강 극복된다.
그러나 이번 시애틀에서는 계속 새벽 4~5시경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처음 며칠은 새벽에 냉장고를 뒤져 고픈 배를 채웠다. 그런데 사나흘이 지나도 배는 고프지 않은데 매번 눈이 자연스레 떠졌다. 무엇 때문일까? 처음에는 남의 집이라 내가 너무 조심스러워 하나보다 생각했지만 드디어 답을 알아냈다.
그렇다. 위 넌센스 퀴즈의 답인‘나이’ 때문이었다. 절대로 먹지 않을 수 없으며, 많이 먹게 되면 죽는다는 나이 때문이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톰 행크스는 사별한 아내가 그리워 늦은 밤 홀로 잠을 못 이루고 있으나,이번 여행에서 나는 마눌님이 바로 곁에서 자고 있어도 새벽이면 어쩔 수 없이 일찍 깨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아침’이 되었다.
아무튼 나도 영어로는 톰 행크스처럼 ‘Sleepless in Seattle’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잠 못 이룸은 전혀 내 탓이 아니다. 단지 “네 탓이오”이다. 나의 달콤한 아침 잠을 빼앗아 간 것은, 바로 나이라는 녀석 때문이었다.
이 고얀 녀석은 나의 사랑인 시애틀 크램 차우더 수프를 빼앗아 가기도 했다. 우리는 이 나이라는 녀석을 어떤 때는 ‘세월’ 또는 ‘시간’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늘도 이른 새벽, 나이라는 녀석 때문에 수동적으로 눈이 띄어(?) 산책에 나선다. 반시간 못되게 걸으면 초등학교 하나가 보인다.
계속해 반시간을 더 걸으면 ‘날아오르는 독수리’라는 공원 입구에 도달한다. 불곰 그림과 함께 입구에 쓰인‘야생동물주의’경고 때문에 멀리 들어가지는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 다시 걸음을 돌린다. 되돌아오는 길에 초등학교 언덕 너머로 아침 해가 돋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다.
일출을 바라보다 엉뚱한 생각에 빠진다. 해가 멈추면 시간이 멈출 것이고, 시간이 멈추면 나이도 멈추게 되는 것일까?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 정신을 집중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며, ‘일체유심조’라 우리의 마음이 온갖 사물을 만들어낸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나는 해를 멈추게 할 수 있다.으라차차. 눈을 감아 보았다.
눈을 감고 해, 아니 시간을 멈추게 하니 옛날의 내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렸을 적 어디선가에서 내가 뛰어 놀고 있다. 옆에 누렁이 한 마리도 보인다. 아버지가 진도에서 도시락 통에 숨겨서 가져 왔다는 ‘도꾸’라고 불렀던 진돗개이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제주대학으로 발령 나자 어머니는 어린 장남을 제법 가장 취급을 하여 주었다.
바로 그 해 외곽 변두리 동네로 이사할 때, 나는 직접 줄을 잡고 도꾸를 억지로 끌어 이삿집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지금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날처럼 다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꿈속에서 뵐 때마다 입고 계신 진달래색 고운 한복 차림이다. 어머니는 손녀손자를 ‘내 강아지’하며 부르신다.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냐고? 공학도 대신 이제 대나무 꽂고 작두 위를 뛰어 보라고? 이런 고얀 일이, 네 말대로 과연 그리하련다. 그런데 어디 보자, 지금 너는 모자를 쓰고 정월에 귀인을 만났구나.
내가 베레모를 즐겨 쓰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점괘에 다 쓰여 있어. 지금 내 신통력에는 네 베레모가 녹색인 것까지도 다 보여. 또, 뭐라고? 귀인이 도대체 누구며, 그리고 녹색이 아니라 흰색 베레모라고?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박명수식 호통형 탈출법이 생각난다.) 시끄러,그냥 들어!
녹색이 아니라 흰색이었으니 정말 다행인 줄 알아! (호통형 목소리에 짜증형 눈빛을 더한다.) 만약 녹색이었음 아무리 귀인을 만났어도 자네 명대로 살지 못해. (이제 정신을 차리기 전에 빨리 마치도록 하자.) 용한 부적이 있으니 복채나 두둑이 내도록 해. 밖에 뭐 해? 다음 손님 들어오시라고 해.
추언: 마눌님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아침에 일찍 눈을 뜨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아직도 덜 들어서, 아니 철이 덜 들어 ‘양지 아래 강아지 꿈’ 같은 몽상에 빠져 있다고 핀잔을 들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