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문인협회원)
보이지
않는 거울
여성들만의
수녀원에는 거울이 없다고 한다. 허나 보이는 거울만 없을 뿐, 보이지
않는 거울마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거울로 비쳐 남모르게 항상 마음을 밝혀야 한다는 뜻에서
보이지 않는 양심의 거울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필자는
오래 전 ‘보이지 않는 양심의 거울’을 신문지상에서 목격한
일이 있다. 1972년 12월 27일부터 발효된 유신헌법을 여당 국회의원들만의 찬성으로 국회의사당 별관에서 통과시킨 뒤 옆 골목으로 빠져 나와
대기중인 자가용차를 타려는 의원들의 모습이 그랬다.
어쩌면 그 얼굴들이 하나같이 도둑질하다 들켜 도망가는
새벽 밤손님 같은 인상들인지, 그들의 얼굴에서 보이지 않는 양심들을 볼 수가 있었다. 떳떳한 일일수록 대낮에 밝은 빛 속에서 행해지는 법이거늘 비겁하게도 고요히 단잠을 자는 그 틈에 나라의 대들보를
세우는 그 중요한 일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도망치자니 그들에게도 양심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에겐
공감성(共感性)이란 것이 있다. 그 공감성의 최대공약수가 바로 양심이란 잣대다. 사람들은 이뤄놓은
공적만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그 목적이 선하면 방법 역시 정비례해서 선해야 한다.
8ㆍ15 광복 이후 펼쳐진 한국 정치사 속에서 흑백이 분명해진 일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경험했다. 첫째는 독재의 말로는 비참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옳지 아니했던
사람들의 말로 역시 일시적인 영광에 그쳤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가진 ‘지식의 상아탑’이 결국은 결국 자기 출세의 도구화로 이용됐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다고 자타가 인정하고 있어 일류를 거치지 않은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찾아보기 힘든 나라다.
결국은 높은 교육열로 인한 일류가 출세로 치닫게 하는 사다리 구실을 한 셈이어서 교육열 자체가 맹점이 된 셈이다. 배워서 남을 주고 나눠야 하는 사고와 가치관을 갖는 것이 참 배움의 길이거늘 배움을 통해 자기 배만 채우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요즘
돌아가는 한국 정치기상도를 봐도 분명한 한가지는 정치인들은 옳은 것은 알고만 있을 뿐 그 옳은 것대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초석이 되고 밀알이
되는 일은 인색하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일에서는 뒷짐을 지고 팔짱만 끼고 앉아 있으니 소리만 요란스러울 뿐 발동 걸린 차가 굴러갈 줄을 모르는 형국 같아서 씁쓸하다.
한마디로
자기 이익의 눈에 어두워서 내세우기는 대의를 위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딴전을 피우고 앉아 머릿속으로 자기 나름대로 장기 알을 두고 있는 것과도
같다.
마치
의사가 훌륭한 의술로 특정 부위의 수술은 성공했지만, 전체적인 병세가 악화돼 환자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사실을 모르거나 방치하고 있는 꼴이다.
결국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다시 살려내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된다. 오직 한 길은 선한 양심으로
되돌아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베드로전서 3:21). 우리에겐
저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양심이 있다. 선물로 받은 양심대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 절실한 시대이다.
자신의 소명과 노력을 다해 일점일획(一點一劃)이라도 양심의 거울에 먼지가 끼지 않기를 바라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보이지 않는 양심에 따라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이를 소중히 여긴다면 옳은
일에 하나가 안될 일이 없다.
철학자
칸트는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있듯이 내 마음속에는 반짝이는 양심이 있다”고 했다. 크리스천 여부를 떠나 누구나 재음미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