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별을 향해 가는 사람들

이 에스더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별을 향해 가는 사람들


동생이 뜬금없이 USB를 보내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제작한 우주 과학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작은 우물만 한 나의 하늘에 갑자기 별들이 복작거리기 시작했다.

조기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동생은 나름대로 짜놓은 시간표에 맞춰 찬찬히 준비를 하고 있다.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천체물리학 공부라고 했다. 이제라도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단다. 그 말을 들은 후로 동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언제부터 동생은 별을 바라보았을까. 밤하늘의 별들이 무슨 말을 했기에 다시 대학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굳혔을까. 13부작이나 되는 방대한 <코스모스>를 보는 내내 마음은 동생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좇고 있었다.

몇 년 전, 한국에 파견근무 중이던 동생네 집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전철역 근처에 있는 조각 작품이 눈에 띄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세 개의 커다란 돌덩어리를 세워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따스한 기운이 느껴져 자꾸만 눈길이 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아빠와 엄마, 아이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가족”이라는 글씨가 작가의 이름과 함께 조그맣게 새겨져 있었다.

파격이었다. 대부분의 가족상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과는 달리 ‘가족’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 사람이 따로 떨어져 서 있었다. 낯설게 여겨졌던 ‘가족’에게로 점점 관심이 쏠린 것은 그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길목에 서서 조용히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세 사람.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 곁에 가만히 서 보았다. 그들의 숨결이, 심장의 박동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서 담배 냄새가 났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않았다고 구시렁거리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수술실에 보내 놓고 기다리는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이후로 몇 차례 같은 상황이 생겨서 담배를 태우곤 했는데 곧 끊을 거라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벌써 대학 졸업반이 된 예쁜 조카의 몸 안에는 네모난 배터리가 들어 있다. 심장 박동을 위한 장치이다.

아마도 그 즈음부터였을 것 같다. 동생이 밤하늘을 바라보게 된 것은. 막 세상에 나온 연약한 생명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젊은 아빠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을까. 담뱃불처럼 벌겋게 타들어가는 속을 부둥켜안고 어둠 속에서 올려다 본 하늘엔 아마 별조차 보이지 않았을 게다. 바위 같은 아픔이 머나 먼 밤하늘에 별이 되어 떠오르기까지 하얗게 뒤척였을 수많은 밤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따로, 그러나 함께 있는 세 사람. ‘가족’이라는 조각 작품이 마치 동생네 같았다. 내가 네가 될 수만 있다면 수만 번 너의 심장이 되어 주었으련만. 그리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그렇기에 더욱 절절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 그들 사이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가족’의 구도가 좋았다. 언뜻 외롭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그들 안에는 안정감과 방향성이 있었다.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 사람은 분명히 한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날마다 그들의 키가 조금씩 자라는 것 같았다. ‘가족’의 이야기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너를 위해 네가 되길 원했던 마음들이 서로의 삶을 붙들고 있었기에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굳게 지켜올 수 있었을 게다. 햇살이 곱게 내리는 날, 그들은 가슴에 안은 빛줄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줌씩 나눠주고 있었다. 동생네도 그렇게 힘든 이들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곤 했다.

세 사람의 시선은 별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어둠의 깊이를 아는 사람이라야 별을 가슴에 품을 수 있으리라. 밤이 깊어도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아득히 먼 곳에서 그들을 향해 손짓하는 별이 있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은,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사람들이라 했다. 별을 떠나오면서 우리는 어쩌면 조각 하나쯤 별에 남겨두고 온 것은 아닌지. 그래서 누구나 조금씩 부족하고 모자란 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 손을 잡아주며 함께 가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게다. 조각에 대한 그리움이 우리의 눈을 들어 별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닐까. 가슴에 별을 품고 살다가 언젠가 별로 돌아가는 날, 우리 모두 완전한 빛 가운데서 온전한 별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기를.

동생이 금연을 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는 의미일 게다. 여전히 존재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하고 있는 동생이 이젠 어둠 너머의 우주에서 숨 쉬고 있는 별들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왕자’의 친구 같은 조카도 아빠와 함께 별을 보며 아름다운 여행을 계속 할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은 유난히 별이 많다. 어둠 속에서 별을 보는 이들의 집 마당에 별빛이 가득 내렸으면 좋겠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