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모를 찾고 있는 타라 브래드포드(오른쪽)씨와 남편>
인천
최성예씨, 사진 보고 연락해 딸이라고 주장
“남편
사망 후 입양시켜놓고 평생 눈물 흘려”
<속보> 3살 때 입양된 뒤 생부모 찾기에 나선 몬태나주 한인 여성 타라 브래드포드(46)씨가 43년 만에 극적으로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찾을 가능성이 커졌다.
‘Kim Dong Sook’(김동숙)이란 이름과 입양 번호(#9680),
생년월일(1969년 7월8일)만 적혀있는 사진이 유일한 단서였던 그녀의 사연을 보도한 기사가 한국일보와 시애틀N을 통해 인터넷에서 확인한 그녀의 어머니 등 가족이 연락을 해왔다.
<타라씨 입양 당시 모습(왼쪽)과 최성예씨 현재 모습>
현재
인천 서구 원당동에 사는 최성예(70)씨는 국제전화를 통해 “한국
인터넷을 통해 타라 브래드포드의 기사를 봤는데 내 딸이 확실하다”며 “딸의
이름은 ‘김동숙’이 아니고 ‘김옥향’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얼굴을 봐도 한 눈에 내 딸인 것을 알아봤고, 생년월일도 옥향이와 같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딸 옥향씨를 입양시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결혼한 뒤 경기 파주에서 살았던 최씨는 당시 1966년생인 아들과 1969년생인 딸을 낳아 길렀지만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빠져 1971년 갑자기 사망했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혼자 살길이 막막했던 그녀는 남동생 등 친정 식구들이 살고 있던 서울로 왔으나 가정 형편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20대
중반 나이에 두 아이를 기를 수 없어 서울을 헤매다 당시 용산에 있는 한 칼국수 집에 들렀고, 그 식당
주인으로부터 딸을 좋은 곳으로 입양시키자는 제안을 받았다.
최씨는
이후 이 칼국수 집 주인과 함께 홀트 복지회를 찾아 딸의 미국 입양을 결정했다.
그녀는
“당시 홀트를 찾아갔는데 우선 내 안구부터 조사했던 기억이 난다. 잠이
든 옥향이를 거기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나왔다”고 회상했다.
이후
아들도 파주에 있던 큰 집에 맡긴 뒤 힘겨운 생활을 하다가 재혼했으며 새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40)과
딸 장미예(38)씨를 낳아 기르며 살면서 평생 동안 옥향이를 입양시킨 죄책감에 시달려 눈물로 보내왔다고
했다.
딸
장미예씨는 “엄마가 미국에 입양 보낸 언니를 그리워하며 평생 동안 눈물을 흘리며 찾길 원해 입양관련
뉴스만 보면 관심을 갖게 된다”면서 “인터넷 다음(Daum)에서 언니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사진을 보고 한 눈에도 우리 가족임을 알아봤다”고 말했다.
최씨도 딸 장씨가 보여준 기사 속 사진을 보고 한 눈에 딸임을
알아보고 눈물을 쏟아냈다.
장씨는
“언니가 돌아가신 작은 외삼촌을 가장 많이 닮았다”면서 자신이
어렸을 적 어머니 최씨, 외삼촌 등과 함께 찍은 사진(아래 사진)도 보내왔다.
장씨는 “엄마와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셔 미국에 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 언니와 연락하고 최종 확인작업을
거쳐 언니가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을 방문하는 쪽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