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성직자의 자질과 소명
이 글에서 말하는 ‘성직자’란 그리스도교 경전인 성경 66권을 포교의 사명으로 맡은 성직자만을 호칭한다. 성직은 ‘거룩 성(聖)’자와 직(職)의 합성어로 ‘거룩한
직업’이란 뜻인데 성직에 충실 하려면 이 거룩이란 낱말부터 바로 이해해야만 한다.
성경에서의 ‘거룩함’이란 헬라어 ‘하기아조(ἁγιαζω)’에서 온 ‘하기오스(ἁγιος)’란 낱말로‘구별된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구별’은 종류에 따라 갈라놓음을 의미하는데 ‘차별’이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똑같지 않고 다르다는 뜻이다. 그럼 무엇이 다를까? 일반적으로 인간에겐 공통된 것이 있는데 자기(Ego) 이익만을 제일 먼저 추구하려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성직자는 이 같은 경우에서 예외가 돼 자기중심적인 삶을 지양(止揚)하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바뀌는 것을 전제로 한다.
현실은 영악하게 자신의 이익을 잘 챙겨야만 생존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잘 나가는 똑똑한 사람으로 칭송 받는다.
설사 눈 앞에 놓인 현재의 손실이 있더라도 이 같은 풍조의 벽을 넘어서면 그는 이미 소명(召命)을 받은 자임이 틀림없다. 궁극적
관심을 현세가 아닌 피안(彼岸)으로 옮겨 놓은 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소명’의 소(召)는 ‘부를 소’로 윗사람이
위엄있게 부르는 것을 뜻하고 명(命)은 ‘목숨 명’으로 임금의 명령을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소명은 사람이 어떤 특수한 신분으로 조물주에게 봉사하도록 신(神)의 부르심을 받았음을 뜻한다.
성직자는 바로 이 같은 부르심에 응해서
받은 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명자(使命者)이다.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한 것(고린도전서 4:2)도 같은 맥락이다.
충성은 맡은 바를 이루도록 공을 들이는 정성(精誠)을
뜻하는데 성직자에게 요구하는 충성이 바로 계시다(히브리서 3:2).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계시록 2:10).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며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느니”라는
이 말씀에 용기와 위로를 받게 된다(마태복음 25:21).
하지만
이 충성을 다 하려면 반드시 구비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이것은 지상명령과도 같은 것으로 바로 성직자가
소명과 자질을 갖추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원칙적이고 상식적인 조건이 통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 시대의 현실이어서 깊은 아픔과 상처를 안겨준다.
알다시피 한국 교회의 고속 성장은 1970년대부터인데 양적으로는 놀라운 성장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의 목적이자 온전한 수준의 참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세상을 변혁시키는데 있어서는 실패했다.
교회 지도자인
목사의 소명과 자질의 철저한 검증과 충실한 훈련 없이 목사를 수적으로만 양성해 공장 제품처럼 대량 배출했을 뿐이다. 이 결과 성직자에 대한 불신의 정도가 이만 저만이 아니라 그 도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이제라도 꼭 추슬러야 할 것은 성직자를 양성시키는 교육기관의 혁신적 변화를 이뤄내는 일이다. 교수의
질적 향상과 교과 과정, 훈련방식 그리고 교육 환경시설의 개혁을 가져올 수 있도록 기준과 범위를 엄격하게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질과 소명감을 확실하게 자립한 성직자를 배출해야 한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이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듯, 자질과 투철한 소명감으로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는 성직자들이 넘쳐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