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
교회(敎會)란 곳을 종교 신앙의 가르침을 선포하며
종교의식을 행하는 건물로 이해하기 쉽다.
한때 교회를 ‘거룩 성(聖)’과 ‘집 당(堂)’자를
합쳐 교회 대신 ‘성당’이라고 호칭한 적이 있었다. 요즘에는 천주교를 포함해서 교회라 호칭하는 경향이 짙어가고 있다. ‘교회’든 ‘성당’이든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절실하기에 이번 기회에 해답을 찾아봤으면 한다.
교회를 헬라어로 ‘ἐκκλησια(에클레시아)’라 하는데 ‘ἐκ(에크)’와
‘κλησια(클레시아)’의
합성으로 ‘ἐκ(에크)’는
‘Out of’란 뜻이고 ‘κλησια(클레시아)’는
‘불러낸다(Call out)’의 뜻을 가진 동사 ‘καλεω(칼레오)’에서
왔다. 우리가 다 불러냄을 받아야만 하는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기에 전도서 5:17 절에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고 했다. 이
구절의 가장 중요한 낱말은 ‘어두움’이다.
헬라어로 ‘어두움’을 ‘σκοτος(스코토스)’라
하는데 뜻은 ‘죽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죽음의 원인을 항상 죄에 두고 있다.
따라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했다.(로마서 5:12). 이것을 로마서 6:23 절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삯’은 일을 해준데 대한 보수(Wage)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례비다.
이처럼 죽음의 원초적 원인이 죄에 있기에 죄에 대한 문제 해결은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첫 단추가 아닐 수 없다. 차가 움직이려면 제일 먼저 시동이 켜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첫 단추는 바로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가 되신다’는 주종관계가 이뤄져 ‘주는 우리를 지으신 자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는 것에
있다.(시편 100:3).
첫 단추는 항상 바로 끼워져 있어야 한다. 단추가 많이 있는 옷을 입을 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그 다음 단추도 잘못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되고(잠언 1:7)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전도서 12:13)인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러기에 이 본문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만 하는 곳이 교회요, 이
책임을 다해야만 하는 것 또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다. 이 사명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심을 바로 알게
해주는 데서 시작된다.
교회를 헬라어의 또 다른 말로 ‘ἐκκλησια(에클레시아)’ 대신 ‘κυριακος(쿠리아코스)’라고도 하는데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빠져 나온 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닌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고린도전서 3:16).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전에는 하나같이 흑암의 권세 하에 있었으나 이제는 그 구속에서 빼냄을 입은 자들이 되었으므로(아모스 4:11) 지금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게 되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로마서 5:3)
이제는 그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이 우리 여생의 행로가 되길 바란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이 오직
그가 인정하시는 그 길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