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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손자의 눈물-김 준 장로



김 준 장로(칼럼니스트)
 

손자의 눈물

 
이민 1세 할아버지 할머니들 중에는 손주들에게 우리 말을 가르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 입니다. 그것이 조부모로서 손주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표시요 보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필자도 가까이 사는 손자(Wesley)에게 5살 때부터 1주일에 두어번씩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중학교에 입학한 지금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또 가정에서 영어만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에만 길들여진 웨슬리에게는 발음도 생소하고 어순도 완전히 다른 한국어 공부가 많이 부담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를 달래고 격려해가면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웨슬리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7살 때였습니다. 겨우 한글 낱말들을 익히고 있을 때 엄마와 함께 정기 검진을 받으러 병원엘 갔습니다.

의사(백인)가 묻지도 않는데 자기는 두 나라 말을 한다면서 자랑을 하더랍니다. 의사가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고 묻자, 영어와 한국어를 한다고 대답했답니다

의사가 그 한국말을 좀 들려달라고 하자 웨슬리는 얼른 왼손을 들어 올리면서 오른 쪽”, 오른 손을 들어 올리면서, “왼 쪽이라고 의기양양 하더랍니다. 그 의사가 웨슬리의 언동을 무심히 흘려버렸겠지만 만일 그가 웨슬리의 언행을 그대로 기억 속에 담았다면 그는 웨슬리의 착각 때문에 좌와 우에 대한 한국어의 개념을 평생 잘못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한번은 교과서에 고소한 참기름이라는 말이 나와서 고소하다는 뜻을, Taste of Sesame Oil(참깨 기름의 맛)이나 nutty(견과 맛이 나는) 등의 설명으로는 흡족하지 않아 부엌에서 참기름 병을 가져다가 맡아 보게 하여 실물 교육을 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동사(動詞)를 가르칠 때였습니다. 영어에는 옷을 입는다든가 몸에 무엇을 착용한다고 할 때, wear put on 정도로 다 통하는데 우리 말은, 옷은-입는다, 모자는-쓴다, 신발은-신는다, 장갑, 반지는-낀다, 시계는-찬다, 목도리는-두른다, 귀걸이는-단다 등…. 

그 표현의 다양함에 웨슬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테스트를 했더니 장갑을-입는다, 시계를-두른다 라고 쓴 오답을 보면서 웨슬리에게 고통을 강요한 것 같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웨슬리가 9살 때 나와 나눈 대화입니다.

어제는 교회의 어느 장로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갔었다

슬펐어요?”

그럼, 많이 슬펐지. 그리고 그분의 어린 손자가 읽는 추모사를 들을 때 더 슬프더라

할아버지 울었어요?”

그래, 눈물이 많이 나더라너도 후 다음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추모사를 할 수 있겠니?”

그럼요, 나도 할 수 있어요

그럼 할아버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건데?”

웨슬리는 대답을 하지 않고 무엇인가 깊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약간 심각해진 분위기를 웃음으로 바꿔 보려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가 안계시니까 한글 공부 안해도 된다그런 말 할 거지?” 그랬더니 웨슬리는 웃는 게 아니라 정색을 하면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 보았습니다. 나도 웨슬리를 똑바로 마주 보면서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러자 웨슬리의 그 맑고 동그란 두 눈에 눈물이 가득히 고여 금방이라도 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웨슬리는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 가더니 수돗물을 틀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닦고 나온 웨슬리에게 나는 그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아니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묻지 않을 것 입니다. 그의 눈물을 다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착하고 정이 많은 웨슬리가 흘린 그 눈물의 의미는 웨슬리와 나 사이에 간직될 영원한 비밀로 묻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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