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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문학-정동순 수필가] 쉰 고개



정동순 수필가
 
 
쉰 고개

 
얼마 전에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보러 갔었다
625전쟁, 파독광부, 그리고 월남전, 이산가족 찾기까지 파노라마 같은 한국 역사를 살아낸 덕수라는 남자가 있다. 일본강점기에 태어나 625동란을 겪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신 부모님 세대를 떠올리며, 그의 말대로 자식 세대인 나는 그런 시절을 겪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는 국제시장에서 상인으로 볼품없이 늙어온 덕수가 아내와 부산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꿈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내 꿈은 선장이 되는 것이었다고.’ 그의 아내는 왜 그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생활인으로 살아내는일과 꿈을 추구하는 일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마침 고등학교 단짝이었던 친구도 만났던 터였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친구는 의상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막연하게 소설가를 꿈꾸던 여고생. 우리는 둘 다 꿈에서 멀어져 있고, 아직도 편하게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직업 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영화에는 19금이란 영상등급이 있다. 영상물이나 공연물에서 19세 이하는 관람 불가라는 뜻에서 19금이라고 한다

주로 청소년들이 보기에 과도한 노출을 했을 때나 폭력의 수위가 높을 때 적용되는 가장 높은 수위의 등급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접해서는 안 되는 것, 19금을 뒤집어 보면, 이 나이에는 보호되어야 할 순수의 등급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때에 우리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던 나이는 지나고 보니 인생의 황금기, 청춘이라 불렸다.

요사이는 49금이란 우스갯말도 있다. 49. 나이 쉰이 되기 전에는 접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신세대가 아니라 쉰세대. 곁불에 혹하지 말고 속불을 살려라, 등등 49금도 19금처럼 성적인 담화가 주를 이루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9금은 왕성한 상상력을 제재할 목적인데 반해, 49금은 잔치가 끝난 후의 허무함에 대한 자조적인 위트가 주종이었다.

이런 담화를 주워 읽고 키득거리는 것도 잠깐, 나도 이제 49금을 지날 나이가 코앞에 닥쳤음을 느낀다. 우둔하여 지천명(知天命)은 못 하더라도 인생의 반환점에 이르렀다면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 쉰이 되기 전에는 얻지 못하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뒤집어서 나이 쉰이 되었을 때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미 몸도 하루가 다르고, 시간은 시시각각 주름살을 늘어가게 할 것이다. 나이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또한 얻어지는 것을 보려 한다. 나이 쉰이 되면 갱년기 이후의 신체 리듬의 변화와 그것을 인정하는 솔직함에서 얻어지는 편안함도 있을 것이다

오래된 숲 속에 조화롭게 들어선 식물들처럼 편안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무엇인가로 영혼의 빈틈을 조화롭게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비로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이 쉰에는 염색을 하려고 한다거나, 주름살을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외적인 화려함보다는 내면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에 공을 들여야할 것이다

영화 <>에서 열연한 배우 윤정희씨는 자연스럽게 늙었을 때 우러나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준다. 비슷한 연배임에도 성형으로 주름살 하나 없는 다른 여배우가 감히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을 더 깊게 이해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몸에서 온화함이 절로 우러났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지난 몇 년간의 가족사진들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문득 내 사진들만 모아서 화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없이 나다운(?) 얼굴과 지나온 시간들을 담아보고 싶다. 쉰이 되면 지나온 시간들을 화보로 만든다 해도 흉이 되진 않을 것이다

나이 쉰의 언덕에 서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며, 또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내려다보며 부끄럽지 않은 얼굴을 가지고 싶다.

이제는 욕심을 내어 더 큰 집을 지으려는 꿈은 버릴 것이다. 아이들도 다 자라 떠난 자리의 쓸쓸함을 채워 줄 나만의 공간을 하나 만들어 온 벽면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램프 아래서 글을 쓰는 모습을 꿈꾼다. 그곳에서 기도를 많이 하고, 가끔은 울기도 하고, 여전히 꿈을 꾸고 싶다

자신과 더 이상 불화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나이, . 그렇다면 즐거이 쉰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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