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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수필-박경숙] 버리기 연습



박경숙 수필가(서북미문인협회 회원)
 

버리기 연습  

 
우리 집 앞뜰에 버티고 서서 영토를 넓혀가고 있는 잎 너른 나무는 어느새 앙상한 가지를 이고 겸허한 자세로 하늘을 향해 고독하게 서있다.

밖엔 비가 내리고, 떨어진 낙엽이 비에 젖어 바람 부는 대로 뒹굴고 있는 밖의 풍경을 바라보니 가슴이 서늘해진다낙엽이 지천으로 떨어지면 펄펄한 젊은이도 내가 왜 사느냐 묻고, 그 나이에도 시간을 점치며 가던 길을 돌아보게 된다.

모두 올해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고 푸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든다. 2014라는 숫자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2015년을 맞아야 하니 말이다.

 시간 전부터 의자에 앉아서 계절이 깊어가며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바람 부는 거리에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가득하다. 낙엽이 지는 소리, 처마 끝에 달린 철제 풍경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내는 소리도 들린다. 겨울에 들리는 소리 중 제일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소리다.

봄에 들려오는 청아한 새소리와는 다르게 겨울의 새소리는 처량하기 때문이다. 적막만이 가득한 회색빛 하늘엔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들, 그 유연한 날갯짓에 맞추어 맑고 서러운 음조로 끼룩끼룩 울었다. 그 소리는 가슴을 저미는 찬란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런 종류의 슬픔은 가슴을 씻어주고 인생의 비밀과 감추어진 것을 이해하게 되고,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주기에 그 감정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까지 그냥 둬본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새해를 맞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마지막 달랑 남은 달력 앞에서 움츠러든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산 것 같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쏙 빼 닮았으니 떳떳하게 새해를 맞을 수가 없다. 죽음을 향해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나, 인생은 쉬지 말고 길을 가라고 재촉하지만, 멈추어 쉬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평소에 멈추어 서서 삶을 되돌아볼 만큼 여유를 지닌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예를 들어 갑자기 병이 찾아왔거나,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여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인생이라는 식탁에 앉아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갖게 된다.

어려움은 우리의 삶에 쉼표와 같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가만히 내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문제라는 을 통하여 나를 낮추게 되어 겸손을 배운다. 나와 화해하는 시간이다. 위태로운 이 땅의 삶이 때때로 눈물 나도록 힘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견디고 싶은 마음이 드니 고마움이 앞선다

비에 젖어 떨고 있는 키 큰 나무가 애처롭다기보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나처럼 자신과 화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바라보니, 그가 나인 듯 내가 그(나무)인 듯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비바람을 견뎌내고 뿌리를 깊이 내린 그 겨울나무가 내게 넌지시 말을 건다. 내일의 밝은 해를 보려면 누구든 용서해야 하고, 맑게 살려면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남을 위해 울어야 한단다. 내가 너무 수다스러웠고, 안일주의와 물질주의에 젖은 삶은 분주했고.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생의 본질적인 것을 간과했다고 나무란다.

그리고 자기처럼 한 잎도 남기지 말고 다 버리는 연습을 하란다. 버릴 게 없는 그때가 오면 자유로운 영혼으로 어디든 훨훨 날아갈 수 있단다

그렇다. 이제는 버리는 일을 시작할 때다
삶을 간소화하고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버리고, 쓸데없는 생각은 망각하고 지극히 소박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 삶의 질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에 있지 않고 사는 동안 삶을 누군가와 얼마만큼 나누고 사는가에 있다

남에게 행하는 작은 친절이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삶이 진정 아름답고 복된 삶이 아닐까?

8번째 손녀 스텔라는 나를 부를 때 꼭 아름다운 할머니(Beautiful Grandma)”하고 종달새 같은 높은 소리로 부른다. 그 소리는 피아노의 높은 건반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처럼 감미롭다. 3살밖에 안 된 어린 아기가 어떻게 이런 말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

어쨌든 손녀의 예쁜 말씨 덕분에 삶이 온통 분홍 일색이다. 내 삶이 행복하고 풍성하도록 이 아이가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몽둥이 들고 지켜도 못 막고, 철삿줄로 동여매도 잡지 못하는것이 가는 세월이므로 흐르는 시간을 탓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좀 더 의미 있게 사는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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