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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문학-김학인 수필가] 유월의 얼굴



김학인(수필가)

 
유월의 얼굴

 
봄볕이 아직 머뭇거리는데 발 빠른 여름에 밀려 봄은 슬며시 자리를 내준다.

유월, 한 해의 복판에서 절반의 계절을 담은 넉넉한 하늘은 넓은 잔디밭에 푸른 구슬을 나눠준다. 새로 돋은 나뭇잎은 날로 짙어가는 녹색 몸태로 지나가는 바람에 손길을 보내고 꽃들은 다시 만난 반가움으로 도란도란 우정을 다진다

꽃 나라의 여왕으로 자리를 굳힌 현란(絢爛)한 장미꽃은 가시로 몸을 사리고 슬픈 아네모네는 바람에 실려올 사랑의 메시지를 그리며 목을 뺀다.

푸르름이 익어가며 뿜어내는 싱그러움과 평온함 뒤에 아픔의 역사가 깔린 아이러니는 세상살이의 이치가 아닐까. 빨간 장미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단심인 듯 유월 항쟁, 육이오 전쟁 등 호국정신이 꽃피운 것이리라.

나는 625 전쟁이 발발하던 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머니는 내게 소질이 보인다며 개성에 사시는 서예가에게 일요일마다 개인지도를 받도록 주선하셨는데 바로 그 첫날이었다.

설렘으로 엷은 꿈을 꾸던 나는 새벽부터 낯선 대포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총성이 불안해 잠이 깼다. 어머니는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셨다.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진격중이니 휴가 중인 장병들은 부대로 복귀하라는 아나운서의 다급한 음성이 떨려 나왔다

큰길에 나가봤다. 거리에는 두려움에 질린 사람들이 떼를 지어 이리저리 밀리며 우왕좌왕, 갈 길을 못 잡고 있었다. 인천에서 근무중이던 아버지는 전투경찰로 나가신다는 전갈을 보내오셨다. 어머니는 중요한 것들을 챙기라고 하셨다. 나는 앨범에서 사진 몇 장을 떼어 상자 속 책갈피에 넣었다. 철없던 시절, 내겐 친구들의 사진이 제일 중요했던 모양이다. 서울이 위험하다는 소문은 가까워진 포성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이튿날 우리는 손수레에 약간의 짐을 싣고 언니 친구가 사는 경기도 양주까지 걸어서 피난을 갔다. 쌀을 구할 수 없어 묽은 호박죽이나 수제비로 끼니를 간신히 때우고 밤낮으로 이어지는 폭격과 기관총 소리를 들으며 공포에 떨었던 피난살이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래선지 난 아직도 호박죽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3개월 뒤, 928 서울 수복으로 집에 돌아 온지 얼마 안 되어 중공군의 전선개입으로 또다시 새해 벽두에 14 후퇴라는 거친 파도를 타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마침내 우리는 부산의 외사촌 언니 집 방 한 칸을 빌려 짐을 풀었다.

민족의 비극 625는 우리 가정에도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한 차례 지나고 가라앉자 또 한 차례. 해방 후 어렵게 두만강을 건넜고 아슬아슬하게 38선을 넘어와 겨우 자리가 잡힐 무렵 전쟁이 터진 것이다. 아이들 여덟을 데리고 연이은 격변에 휘둘리고 지친 어머니는 천직으로 여기던 교직 중에 과로로 쓰러지셨다

이듬해 어머니는 피난지 부산에서 아이들을 줄줄이 세워놓고 한창 나이 46세에 눈을 감으셨다. 인물 좋고 남달리 명석했던 오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린 병사로 자진 입대하여 유엔군으로 전선에서 싸우다가 휴전으로 돌아왔건만 그리던 가정은 이미 옛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중단된 학업에의 열등감과 좌절,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 상심,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자괴감, 게다가 최전방에서 죽음을 넘나들며 인생의 허무를 느낀 오빠는 방황의 모퉁이에 부딪쳐가며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지만 상처투성이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유월에 시작된 동족상쟁의 상흔(傷痕)은 삶이 고달플 때면 되살아나 내 작은 어깨를 짓누르곤 했다.

그런 중에도 세월은 치유의 묘약을 얹고 서서히 흘러갔다. 그리고 아지랑이 피어 오르던 십대에 웃음을 걷어간 유월은 또 다른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 생애에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어른의 통과의례를 거치고 하나님이 주신 첫 아기를 출산했다. 스물두 살 젊은 엄마는 떨리는 팔로 6파운드 아기를 안고 자지러지듯 겪은 진통을 깡그리 잊고 숨이 막히듯 치솟는 감격에 말을 잊었다

새 생명, 우리 아기! 아기는 내게 고통을 이겨낸 후 얻는 것이 참 기쁨이요 감사란 걸 깨우쳐주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내일을 향한 새 힘이 솟았다.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고 아가의 따뜻한 체온을 품을 때마다 행복이란 단어가 불쑥불쑥 내 안에서 뭉클거렸다.

탐스러운 꽃송이로 걸음을 멈추게 하던 앞뜰의 장미 한 그루가 두어해 전부터 시들해갔다. 가시들 사이에 조잡한 이파리가 돋아나고 볼품없는 꽃 몇 송이로 간신히 연명하더니 겨울을 지나면서 아주 폭삭해 버렸다. 마른 줄기와 가지를 사정없이 잘라내고 뽑았다. 가시도 제 구실을 못했다

툭툭 부러지는 갈색 꽃대는 뿌리까지 썩어 소생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겨우살이 준비를 못해주었구나. 아쉬운 마음으로 전정기구를 챙겨 일어서는데 한 구석에 물기 묻은 작은 뿌리가 보였다. 혹시 하는 기대로 밑 둥만 남겨놓고 바짝 잘랐다. 한 달쯤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거기서 작은 가지가 여러 개 뻗고 잎사귀가 피어나면서 귀여운 꽃망울이 방글방글 맺혔다

, 살아나는구나! 말라 없어진 원 가지의 맥을 간신히 이어가는 뿌리의 생명력에 새삼 놀란다.

장미의 계절에 맞추려고 발 돋음 한 여린 가지마다 분홍 꽃송이들이 달콤한 향기를 흘린다.
유월의 얼굴은 가슴 저미는 아픔과 슬픔을 딛고 일어선 곱디고운 미소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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