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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문학-정동순 수필가] 부르심



정동순 수필가

 
부르심

 
한글 전도사
나는 한 때 이 별명이 내 것이었으면 했다. 미국에 온 이후, 가족의 상을 당했을 때의 한 주를 제외하고 한 번도 결근하지 않고 지난 십수년 동안 금요일 저녁마다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잊지 않게 하고 민족의 얼을 전하는 일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인재로 성장하고, 한국인임을 감사하게 여긴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여름방학이 다 끝날 무렵, 타코마 교육구의 한 중학교에 한국어가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될 수도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교사 모집 요강에는 중국어ㆍ일본어ㆍ한국어 교사가 다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한국어 과목이 성공적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워싱턴주 교사 자격증을 갖추고 경험이 있는 교사들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감 날짜를 하루 앞두고 겨우 지원서를 제출했다

타코마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고 한인사회를 위해 활발하게 봉사활동을 하시는 설자워닉 선생님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마침내 한국어가 채택되었다고 한다

타코마에는 이제 두 개의 중학교와 두 개의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우리말이 미국 공립학교의 정식 과목으로 채택된 사례는 타코마 교육구가 유일하다고 한다.

지원서를 내긴 했지만 다니던 직장에서 이미 안정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터라 새로운 도전이 마냥 신난 것만은 아니었다. 직장에서 승진에 필요한 연수를 다 마치고 마음이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먼 길을 출퇴근해야 하는 일이 걱정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허나 우리말이 어렵게 채택되어 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누군가 잘 가르쳐서 타코마 뿐만 아니라 페더럴웨이, 벨뷰 등으로 한국어 과목이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 개학이 코 앞에 닥친 관계로 면접을 거치고, 오리엔테이션 받고, 지문조회를 하고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한국어 교사로 임용되었다.

신규교사 오리엔테이션과 교사연수에 참가하면서 이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벅찬 감동과 함께 내 어깨가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중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듯 타국의 중학교에서 미국 학생들이 한국말과 글을 배운다! 세종대왕님도 무척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가르칠 교실의 열쇠를 받아들고 교실문을 열었다. 깨끗하게 치워진 텅빈 교실을 돌아보며, 서랍도 열어보고 캐비넷도 열어 보았다. 교실 앞에 걸어둘 태극기를 챙겨야겠다

이 벽에는 한국의 위인 몇 분의 사진을 걸어야겠다. 세종대왕, 이순신, 신사임당, 김구, 한 분 더 한다면 누가 좋을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세종 임금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이순신의 용기와 리더십, 김구가 꿈꾸었던 아름다운 나라, 이런 한국의 아름다운 정신문화도 전파하고 싶다. 저쪽 벽에는 한국의 음식을 소개해 볼까? 불고기ㆍ잡채ㆍ김치ㆍ떡교실앞 장식장에는 예쁜 종이접기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어떨까?. 떠오르는 생각이 많다.

아직은 교과서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첫 시간에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나는 선생님입니다. 이렇게 시작할까? 100% 가깝게 가능하면 한국말만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엄마가 어떤 선생님이 되면 좋을지 물어 보았다. 친절해서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교사, 너무 엄격하지 않은 교사, 수업을 재미있게 해서 배우는 학생들이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교사가 되어 달라고 주문한다.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교육학을 배울 때, 필독 도서로 읽었던 오천석 선생님의 <스승>이란 책을 찾아본다. 교사의 기도가 있다. 그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일부이다.

“주여 저로 하여금 교사의 길을 가게 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니다. 저에게 이 세상의 하고 많은 일 가운데서 교사의 임무를 택하는 지혜를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옵니다. 제가 맡고 있는 교실이 사랑과 이해의 향기로 가득하게 하여 주시고…. 주여, 그러나 저는 저에게 맡겨진 이 거룩하고도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도 무력하고 부족하며 어리석습니다. 갈 길을 찾지 못하여 어둠 속에서 방황할 때 저에게 광명을 주시어 바른 행로를 보게 하여 주시고, 폭풍우 속에서 저의 신념이 흔들릴 때, 저에게 저의 사명에 대한 굳은 믿음을 주시어 좌절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앞에서 내가 못할 것이 없다. 나는 한국어 선생이다.


<정동순씨 타코마 교사 채용 관련 기사>

http://www.seattlen.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5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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