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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수필-이대로 수필가] 작심삼일



이대로 수필가(서북미 문인협회 회원)
 

작심삼일(作心三日)
 

며칠 전에 응급실을 찾았다. 요즘 들어 기운이 없고 그 날 아침에는 어지럼증세로 쓰러져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2~3초에 걸친 짧은 순간이었지만 숨을 다시 쉬고 깨어났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얼굴은 하얗게 창백해져 있었다.

온갖 검사를 다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주치의와 만나서 검사결과를 논의했다.

다른 모든 검사는 다 이상이 없으나 가슴 X-Ray 사진에 이상이 있어서 혹시 흡연하느냐고 물었다. 30년 전에 끊었다고 했더니, 사진에 나타난 흔적은 그 무렵 나빠진 폐의 상처 때문이라며 그때 끊었기에 천만다행이라며 지금까지 피웠으면 아마 지금쯤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슨 개선장군이나 된 듯 피워 물기 시작한 담배는 23년간 줄기차게 피워댔다.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참으로 맛있게 피웠고 가끔 양담배를 접할 때는 혹시나 법망에 걸릴까 봐 숨어서 피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이민을 왔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들킬까 봐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이 담배 저 담배 골라가면서 신나게 피워댔다.

평소에는 심심풀이로 그리고 멋으로 피우고 일하면서 휴식시간에는 휴식시간이기 때문에 피우고 식후에는 안 피우면 안 되는, 안 피우면 소화가 안될 것 같아서 일까?

마치 식후 먹는 디저트와 같이 당연히 피우고, 그래서 식탁에는 재떨이가 반드시 놓여있고 전화할 때는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를 나누어야 대화가 잘되고 편지를 쓸 때는 그래야 편지가 잘 써지고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는 안정제로 그보다 더 좋은 약이 없었다. 어색한 자리에서는 여유를 갖게 하고 사교를 위해서는 그보다 더 좋은 촉매제가 없었다. 술과 담배는 실과 바늘과 같은, 분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가족들이 모이면 3형제가 시합이나 하듯 피우기 시작하고 얼마 안돼 방안은 담배 연기로 가득 차고 매캐한 냄새에 심취한 듯 참으로 열심히 피워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가족들의 불만과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금연도 생각하게 되었다. 형제들이 모이면 금연 얘기를 하곤 했지만 이미 인이 박힐 대로 박힌 우리들의 잠정적인 결론은 금연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고 무슨 보약이나 되는 듯 시간이 갈수록 더 피워대기만 했다. 하루에 두 갑은 보통이 되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소화제로 한대 신나게 빨고 재떨이에 비벼 끄고 있을 때 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가지를 긁고 있었으나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버렸으나 내뱉은 담배 연기가 그들 얼굴을 스치자 얼굴을 찌푸리며 아빠~담배 피우지 마." "아빠~"하며 울먹이는 여덟 살과 네 살짜리 딸들의 짤막한 절규에 나도 모르게 식탁에서 재떨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후로 금연 시도를 많이 했다. 참으로 많이 했다. 아이들에게 만은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담배 꽁치를 반으로 잘라서, 한 개를 두 번 나누어서 피워보기도 하고 양이 적게 든 가느다란 담배로 바꾸기도 하고 가끔 하루 이틀 끊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무슨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면 그 동안 안 피웠던 것을 한꺼번에 다 피워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서라기 보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꼭 금연을 해야 한다는 신념은 변함이 없었다.

하루 이틀은 이제 쉬운 일이고 한 주 두 주 한 달까지도 견디어봤으나 결국은 도루묵이 되곤 했다. 그러던 차 같은 직장에 나처럼 금연을 끈질기게 노력하는 동료들을 만나 같이 힘을 합치기로 다섯 명이 의기투합하고 누구든지 담배를 피우다가 들키면 저녁을 사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2~3주가 흐른 어느 날부터 하나 둘씩 피우기 시작했다. 다 피우고 나만 남았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다섯 명이 하나도 성사를 못 했단 말인가? "나만이라도 해야겠다." 오기가 발동했다.

12 31, 송구영신을 기리며 온 집안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식후에 삼 형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피워대기 시작했다. 뿌연 연기와 매큼한 냄새로 눈과 코가 신음하는 중에 나는 여차여차해서 각오했다. 동료들과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제 12시 종이 울리면 나는 끊을 것이라고 선언을 했다.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피우다가 그날 밤 12시가 되는 순간 피우던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른 두 형제는 믿지도 않았고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밥을 굶으면 굶었지 담배는 끊을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두 형제도 3개월 후에 저절로 담배를 끊었다. 나의 실천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후로 골초 중에 왕 골초였던 우리 삼 형제는 지금까지 담배 연기 곁에도 안 가고 좋은 아빠, 건강한 아빠로 군림하고 있다.

작심삼일은 무슨 결단을 실행하다가 길게 가지 못하고 곧 포기하고 주저앉는다는 실망적인 단어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그나마 작심삼일이라도 해봤느냐고? 시작이 반이라고 작심삼일은 이미 절반을 성취한 거나 다를 바 없으리라. 다만 한두 번 작심삼일하고 포기하느냐 끝까지 버티느냐가 관건이리라.

해마다 연초면 결심을 한다. 좋은 부모가 되고자, 좋은 배우자가 되고자, 좋은 형제자매가, 좋은 이웃이 되고자 결심을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실망하고 허탈해 할 것만 아니라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것을 새해로 끌고 가서 끈질기게 노력하는 새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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