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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문학-이성호 시인] 작은 시작의 지혜



이성호 시인(쇼어라인 거주)

 
작은 시작의 지혜

 
리치몬드 해변 근처에 살고 있어 한가한 시간이면 멀리 킹스톤 작은 마을이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 언덕으로 산책을 자주 가곤 한다. 오늘 새벽에도 해변과 숲길을 두루 다니다 거친 숨을 달래려고 빼곡히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전나무 밑, 바위에 걸터앉았다.

앞이 탁 트인 바다에 아른거리며 피어 오르는 물안개를 내려다 보면서 자연이 펼치는 아름다운 풍광에 몸과 마음은 안개처럼 가벼워지고 상쾌함이 극을 향해 치닫는다.

때를 같이하여 바람에 밀려나는 구름 사이로 청초한 하늘이 에메랄드 빛 속살을 드러내며 수줍은 듯 나를 향해 미소를 보내온다. 모처럼의 안식에서 값없이 누리는 자연의 고마움에 푹 빠져들었다.

한참을 무아경에 젖어 미동도 않고 있는데 갑자기 목덜미에 떨어진 차가운 물질에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위를 쳐다보니 높게 치솟은 아름드리 전나무 가지 침엽수 끝자락으로 새벽에 내린 빗방울이 보석처럼 무수히 맺혀 있다.

금세 또 다른 물방울을 낙하시킬 태세다. 개의치 않으려는 생각으로 목덜미의 물기를 훔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하나의 물방울이 왼쪽 귓부리에 떨어진다. 나는 고개를 들어 잎새에 맺힌 물방울을 올려다보며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마음은 나뭇잎 끝에 매달린 물 방울과 더 넓은 바다를 오가며 생각에 잠긴다.

저 나뭇가지 끝에 맺힌 물방울이 자신의 몸을 떨구어 실개천을 타고 흘러 더 큰 강을 이루
어 수 많은 생명체를 태동시키고 끌어안으며 마침내 장엄한 바다를 만들기까지 수 없는 변화를 연출한다는 생각에 작은 물방울 하나가 주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저 작은 물방울이 웅대한 바다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에서 생명체 근원에 필수적인 공헌을 하지만 때로는 형세를 달리해 범람해 자연을 파괴하고, 나아가 인간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가져다 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숙연해진다

내 자신을 포함해 모든 세상사 생성과정 또한 저 물방울이 창출하는 시작과 변천을 닮은, 그러한 섭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생각이 이렇게까지 이르자 사람은 처음 시작부터 혼자일 수 없어 더불어 공생하기 위해 너와 나로 만나 관계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보다 크고 힘있는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서로를 필요로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같은 평범한 진리를 까맣게 잊고 살면서, 성급한 기대 만을 앞세워 결과와 자기 이익에만 집착한 나머지 작은 일에 소홀하거나 경솔해 서로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단체구성에 불화를 자초하면서 파탄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상호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기에 이젠 결핍의 불감증에서 벗어나 작은 시작에도 신중하고 충실할 수 있을 때 파멸과 불행을 자초하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느껴진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나간다.

새해 원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올해도 크고 작은 계획들을 세워 나갈 것이다. 작은 시작에서 신중한 자세로, 그리고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 무사히 목표에 안착할 수 있길 기원한다

한참 동안 내 자신과의 시간에 넋두리를 하고 있는데 또 하나의 물방울이 머리 위에 떨어진다. 바로 그 순간, 바다의 창랑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함인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쉬지 않고 밀려온다. 작은 물방울의 형체가 확대경 속의 커다란 변신을 통해 내 시야를 가득히 메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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