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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 원수-김 준 장로



김 준 장로(칼럼니스트)


원수


역사상 가장 많이 발생하는 비극의 원인은 개인이나 집단간에 원수를 맺어 놓고 서로에게 가하는 끊임 없는 보복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이조 500년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개인이나 정파간에 맺어진 원한의 보복을 주고 받는 비극의 연속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처럼 원한 관계로 인한 인간의 비극과 불행에 대하여 예수님은 원수를 향한 그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라고 가르치셨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바라시는 참 뜻은 원수를 만들어 놓고 그 원수를 사랑하려고 하기 보다는 아예 원수 자체를 만들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원수가 생기게 되는 원인은 대체로 재물ㆍ권력ㆍ명예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되는 대인간의 불화와 나에게 피해와 고통을 준 사람에 대한 분노에서 생기기 때문에 그 욕심을 억제하고 분노를 자제할 수만 있다면 원수라고 하는 원한관계는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방책은 우리가 그릇된 욕심 자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누가 오른 뺨을 때릴 때 왼뺨까지 돌려댄다면 원수가 왜 맺어질 것이며, 속옷을 탐하는 이에게 겉옷까지 벗어주고, 억지로 5리 길을 동행하게 하려는 이에게 기꺼이 10리까지 동행해 준다면 증오심이 나타날 리가 있겠습니까.

이 교훈을 꼭 문자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속에 함유된 의미는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언제나 그 정도로 자신의 욕심을 죽이고 이해 득실에 초연하면서까지 대인간의 화평을 도모하는 지혜를 찾아 살라는 간곡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에게 보복을 행할 때는 그 원수가 당하는 만큼의 고통을 우리 자신도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양방의 원수들 중 보복의 연결 고리를 먼저 단절시키는 쪽이 참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 누구와 원수관계에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원수 된 책임의 일부는 나에게도 반드시 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싸움은 서로 같기 때문에 한다라는 속설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실로 우리의 신앙 인격이 반듯하게 갖추어져서 모든 욕심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그리고 우리의 신앙인격이 상대방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서 있게 된다면 원수는 절대로 생길 수가 없는 법입니다.

독수리는 태풍을 만날 때 그 태풍과 맞서지 않고 높이높이 날아 올라 태풍권을 벗어나 자유롭게 유유히 창공을 날아다닙니다. 우리의 인격도 그 만큼 상승될 때 비로소 미움의 대상을 연민의 정으로 보게 되고 그 연민은 동정심을 자아내게 되고, 그 동정심은 자연히 사랑으로까지 발전될지언정 미움으로 퇴보하지는 않습니다.

원수 된 사람을 미워하다가 그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고 나서 얻는 놀라운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단 한번만이라도 체험해본 사람이라면 그러한 기회를 백번 만난다 해도 단 한번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 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는 동정을 베풀고 사랑으로 품어야 할 사람은 많이 있지만 미워해야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으며 통곡의 기도를 드려야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원수를 맺고 살아야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같은 시대에 같은 지구촌에 동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그 누구나 예외 없이 조만간 이 곳을 떠나야 할 나그네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절대로 원수가 있을 수 없고, 만약 있다면 오직 그를 사랑하는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김 준 장로의 <신앙과 생활>을 추가로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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