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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경의 북리뷰]사랑을 잃어버린 늙은 베르테르여!!!



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박찬기 옮김∙민음사∙1999)



슬프지만은 않은 베르테르 이야기를 하고 싶어
 
베르테르 효과 베르테르 증후군이란 말은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속출할 때마다 의례 한차례씩 신문 지상을 떠돌다 가기 마련이다. 

자살한 연인의 대명사 베르테르 이야기를 펼쳐든다. 슬픈 종말을 알기에 시작부터 마음이 갑갑하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이 짙어져 갈수록, 그를 태운 죽음행 열차가 종착역을 향해 쉬지도 않고 달리는 것을 보며,  먹먹한 가슴은 이미 슬픔의 종점에 도착해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슬픈 사랑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의 작위적인 노력이었을까? 슬프지만은 않은 베르테르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책을 읽고 눈물로 얼굴을 적셔본 적이 있고,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슬픔에 마음을 앓았던 독자들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냐고 나에게 돌을 던질지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인생의 환희만족충만∙기쁨 맛봐

하지만 제목이 주는 슬픔과는 매우 역설적이게 나는  책에서 인생의 환희와 만족, 충만한 기쁨을 맛본다.

참고로 나는 베르테르의 효과 운운하며 자살을 예찬하는 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생의 벼랑 끝에서 피치 못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누군가의  숭고한 죽음을 가볍게 여기려는 파렴치한도 아님을 밝혀 놓는다.

베르테르의 슬픔이 슬픔으로 읽히지 않았던 까닭에는 그가 자살을 고통의 종점으로 생각하지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는 그가 누린 인생 최고의 절정에서 자살로 생의 마침표를 화려하게 찍는다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여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젊은 베르테르도 가슴을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순간 느껴야 하는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고통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고 인생의 의미를 허무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르테르에게 자살이라는 선택의 칼을 뽑게  결정적인 계기가 로테의 사랑을 확인했던 바로  순간이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없다.

인생 클라이맥스에서 죽음의 묘약을 발명   

  막히는 인생의 클라이맥스에서 베르테르는 로테의 사랑을 영원히 소유하기를 미치도록갈망하다 못해 마침내 죽음의 묘약을 발명해 내기에 이른다. 

죽음이 아니면 그들의 사랑이 영원히 그대로 머무르지 못할  같은 극도의 두려움이 베르테르로 하여금 순간을 영속의 것과 서슴지 않고 맞바꾸게 한다. 죽음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지급해서라도

자살을 결심하고 로테의 남편으로부터 권총을 빌려온다. 로테의 손길이 닿았던 권총을 어루만지며 노래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은 연인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자 고백이며, 그의 인생을 요약하는  편의 아름다운 시가 된다. 

죽음의 도구마저 연인의 체온과 숨결을 느끼게 주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베르테르의 마지막 가는 길을 따뜻하게 동행해 준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 로테의 손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듯 베르테르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스스로 아름답게 장식한다. 그렇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담대하게  생을 마감한다.
 
충족함은 죽음을 담대히 맞을 수도 

베르테르의 자살로 감행된 죽음이 그래서 슬프지만은 않았다. 로테의 사랑을 확인했고  확신은 베르테르의  생애를 대신했기에 충분히 만족했다.  바랄 것이 없었던 그의 초연한 삶의 자세를 읽는다.   

아무 것도 더는 바랄 것 없는 충족함은 죽음을 담대히 맞을 수 있게 도와주나 보다. 인생의 허망함에서 찾는 죽음이 아닌, 인생의 충만감에서 초래한 죽음이란 평범한 죽음이 아니었다. 무언가로 인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채울 수 있었다는 것이었기에, 그 삶은 고결하고 거룩하며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것이 사랑하는 연인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이제 껏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나는 생각해 왔었다. 소망을 쫓으며 사는 자와 소망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자. 그런데 베르테르를 보면서 일생일대의 소망을 장렬하게 쟁취했기에, 이보다 더 큰 염원이 필요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소망은 투쟁해서 획득하는 것만은 아니다.  베르테르가 로테의 사랑을 확인함으로 얻은 희열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하고도 신성한 것이자 소망의 성취이다.

죽음 앞에 인생이 하나도 두렵지 않은 자도 알게 돼

무언가를 인생에서 온전히 사랑했기에 자족과 초연의 자세로 사는 사람들, 그래서 죽음 앞에 인생이 하나도 두렵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발견한다. 

그러나 우리는 젊은 베르테르로부터 어느새 점점 멀어져 무력하고 쇠약한 베르테르로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욕심을 여전히 주렁주렁 혹으로 단 채, 어떤 것도 깊이 사랑하지 못한 채, 삶의 기력을 다 쇠진해 버린 늙은 베르테르의 삶은 해가 바뀌어도 새로울 것이 없다. 늙은 베르테르는 하루하루 침범해 오는 죽음이 그래서 두렵기만 하다. 

아, 사랑할 대상을 이미 잃어버린 이 늙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진정 눈물나게 애처롭고 슬픈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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