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한 뒤 걸을 수 없었다…두 계절째 '길랭-바레 지옥' 갇힌 엄마

[백신부작용] 마비 고통…병명 의심에도 병원서 '아니다' 돌려 보내
"인과성 증명까지 긴 싸움될 것…우리 같은 피해자 더 없기를 바라"
 
"이 병을 맞이하는 순간 진짜 지옥을 맞이하는 겁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요."

지난 3개월여 동안의 투병 생활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떨렸다. 공포스러웠던 나날들에 대한 기억과 자신을 간병하며 고생하는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금세 눈가에 눈물이 고여 넘쳤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으니 혼자 눈물을 닦을 수도 없었다. 목소리도 간신히 쥐어짜듯 목구멍을 빠져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길랭-바레 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을 앓고 있는 이화선씨(가명·59)는 3개월째 침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상태가 많이 호전되기는 했지만 화선씨는 아직 혼자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다리는 누워서 자리를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됐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걷지 못하는 상태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겨 신경세포의 축삭을 둘러싸고 있는 절연물질이 벗겨지면서 발생하는 급성 마비성 질환이다. 몸의 감각이 저하되고 저린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사지 마비로 인해 말을 하거나 음식을 삼키는 것,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져 사망할 수도 있다. 연간 인구 10만명당 1명의 빈도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으로 완치를 위한 치료법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되기는 하지만 일부 환자는 후유증을 겪기도 한다. 회복 기간도 경우따라 6개월에서 2년까지 길어지기도 한다.

화선씨는 현재 자신의 상황에 대해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힘들고 어떨 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코로나에 걸리는 게 더 낫지 않았나 싶다"라며 "가족들이 지극 정성으로 간호를 하는데 너무도 미안하다"라고 심정을 전했다.

상상할 수 없던 불행이 화선씨에게 닥친 것은 지난 9월 2차 백신 접종을 마친 직후였다. 접종 첫날 몸살 기운처럼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가족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방송에서 나오는 것처럼 해열제를 먹고 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3일이 지나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접종 4일째가 되는 날 아침 화선씨는 손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걸 느꼈다.

화선씨의 남편 박형성씨(가명·66)는 대수롭지 않은 부작용이라고 생각했던 아내의 증상이 갑자기 악화되자 동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다. 화선씨의 증상을 들던 의사는 "길랭-바레증후군일 수 있다"라며 자신의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형성씨는 처음 듣는 '길랭-바레'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일단 몸이 풀려 무기력해지는 아내의 모습에 일단 119구급대를 불렀다.

형성씨는 구급대원과 함께 굳어지는 아내의 몸을 이끌고 서울 시내 A 대학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에서는 증상의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평소에 기저질환도 없이 건강했던 터라 수차례 피를 뽑고 검사를 해봐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만 돌아왔다. 형성씨가 동네 병원에서 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길랭-바레증후군을 언급했음에도 담당 의사는 '그럴리 없다'라며 화선씨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쫓겨나듯 퇴원을 해 병원을 나온 것이 이튿날 새벽 3시쯤이었다. 

돌아온 집에서 증상이 좋아질 리 없었다. 형성씨는 아내의 상태가 더 안 좋아 진 것을 보고 다시 119구급대를 불렀다. 구급차는 이번에도 A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결국 같은 병원을 다시 찾은 후에야 화선씨의 병이 길랭-바레증후군이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병원에 입원한 이후 화선씨의 증상은 더 악화됐다. 마비 증상이 점점 심해지면서 스스로 숨을 쉬는 것이 불가능해져 호흡기를 달아야 했고 음식도 먹을 수가 없으니 관을 통해 코로 곱게 간 미음을 밀어 넣어야 했다. 20여일 동안 호흡기에 의존하던 화선씨는 고통에 정신을 잃기도 했고 가족들은 화선씨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가족들의 삶은 간호에 초점이 맞춰졌다. 화선씨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형성씨의 도움이 필요했다. 몸이 마비돼 식사를 할 수 없던 화선씨는 코줄로 미음을 삼켰는데 금방 변이 돼 몸 밖으로 나왔다. 밤에도 수시로 아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은 형성씨의 일이었다. 하루 18번 기저귀를 간 적도 있었다고 형성씨는 말했다.

형성씨는 "지금에야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병원에 있을 때는 한, 두시간 이상 자본 날이 없는 것 같아요. 졸면서 아침을 먹다가 앞으로 쓰러진 적도 있었어요"라고 했다. 그는 "몸은 마비됐지만 감각은 살아있어서 배변을 하면 축축한 것을 얼마나 느끼겠어요. 아내가 말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그그'하면서 표정으로 저를 부르는 신호가 생겼어요. 커튼을 치고 기저귀를 갈고 다하고 돌아서면 또 하고, 아침밥 먹다가 연달아 4번을 기저귀를 간 적도 있어요"라고 밝혔다.

화선씨의 가족이 길랭-바레를 통해 잃은 건 단순히 건강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인 형성씨는 일에서 완전히 손을 놓고 간병을 전담하고 있다. 길랭-바레는 희귀난치질환 산정특례 대상에 포함돼 진료비에 10%만 지불하면됐지만 이외에 동반되는 다른 질환들에 대해서는 온전히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병원비만 수백만원이 나왔다. 병원을 나오고 나서도 꾸준히 재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들어갈 비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백신과의 인과성을 인정받는다면 국가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화선씨의 가족들은 이 과정 또한 지난한 싸움이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화선씨의 큰딸 박지선씨(가명)는 "저희는 아직 진료비가 다 나온 게 아니고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니 일단 서류를 준비하고 있다"라며 "필요한 서류가 엄청 많은데 보호자가 이걸 다 떼고 확인해야 해서 보상 서류를 준비하는 게 상당히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선씨는 보상 신청을 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부작용 신고를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있는데 찾아보니 같은 병으로 부작용을 신청했는데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사례를 들었다"라며 "길랭-바레 환자들의 모임에 '언제든 생길 수 있는 병이니 백신 때문이라고 100% 확신할 수 없다'는 글들이 올라오더라"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연이어 환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현재 길랭-바레 증후군은 심근염, 심남염, 척수염, 폐색전 등과 함께 '백신 인과성 근거 불충분 사례'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질병청은 최근 새롭게 출범한 '코로나19백신 안전성위원회'가 새로운 기준을 만든다면 인과성을 따져 보상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화선씨 부부는 '분노'의 마음보다 자신들이 겪은 일이 알려져 비슷한 피해를 입는 사람이 더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형성씨는 "이 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좋으니까. 손발이 저리고 비슷한 증상이 있으면 길랭-바레를 의심해 봤으면 좋겠다"라면서 의심이 되는 증상을 보인다면 꼭 조기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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