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남부 흑인 대학살에 희생된 남성, 123년 만에 장례…왜?

 

1898년 백인 우월주의자들 '흑인 대학살'에 희생된 조슈아 할시

 

할시 증손녀 "가족 뿐 아니라 역사도 찾았다"

 

19세기 미국 남부에서 백인 우월자들이 저지른 '흑인 대학살'의 희생자 장례식이 123년 만에 치러졌다.

CNN에 따르면, 1898년 11월 노스캐롤라이나 윌밍턴 '파인 포리스트' 묘지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미 남부 흑인 대학살'에 희생된 남성 조슈아 할시의 장례식이 학살 이후 123년만인 지난 6일(현지시간) 거행됐다.

사망 당시 40세였던 할시는 묘비도 없이 매장됐다가 역사 연구 그룹인 '제삼자 프로젝트(the Third Person Project)' 조사팀에 의해 발견됐다. 이는 100명이 넘는 희생자 중 유해 매장 장소가 처음 발견된 사례다. 조사팀 관계자는 당시 희생자가 250명에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사팀은 유해를 찾기 위해 공동묘지 기록들을 샅샅이 뒤지는 등 온갖 열정을 쏟았다. 그 덕에 1998년 학살 100주년을 기념해 발행된 보고서에서 희생자 할시의 존재가 확인된 뒤 그의 유해를 처음 발견한 것이다.

대학살 당시 윌밍턴에는 1921년 '털사 대학살'이 일어나기 전의 털사처럼 번성하던 흑인 공동체가 있었다. 윌밍턴학살조사위원회는 "당시 흑인들은 직업인, 숙련공, 공무원, 해양 승무원, 산업 노동자 등 모든 부문에 고용돼 활약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백인 우월주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흑인 유권자들을 위협하고 투표율을 조작함으로써 자치주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이후 무장한 백인 남성들이 윌밍턴의 흑인 신문인 '데일리 레코드'를 불태우며 흑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선출된 흑인 당선인들은 강제로 사임을 당했고 백인 우월주의 지도자들에 의해 대체됐다.

윌밍턴의 문화와 공동체를 완전히 뒤바꾼 이 대학살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쿠데타'로 알려졌다. 또한 이 대학살은 남북전쟁 이후 남부 재건과정에서 20세기 중반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인종 분리를 더욱 강화한 '짐 크로 법(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했던 법)'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번 장례식은 11월 1일부터 10일까지 윌밍턴과 몇몇 단체들이 대학살을 기념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계획한 행사 중 일부다. 이날 장례식은 할시의 집에서 채취한 흙을 말이 끄는 영구차에 싣고서 진행됐다.

이 같은 발견에 할시의 후손인 일레인 신시아 브라운은 "전례가 없어서 충격에 빠졌다"면서도 "당연히 치러졌어야 할 장례식에서 왜 조슈아는 예외였나"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브라운은 "이번 발견을 시작으로 더 많은 희생자들이 발견되고 숨겨졌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깨닫고 있다"고 덧붙였다.

할시의 증손녀이자 역사 교사인 그웬돌린 알렉시스는 학교에서 윌밍턴 학살을 포함한 미국 역사를 가르쳤지만 자신이 희생자와 관련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녀는 "제 증조할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며 "가족 뿐 아니라 역사도 함께 찾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할시의 다른 후손은 "이 사실은 고통스럽지만, 변화의 기회이기도 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브라운은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그래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또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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