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노태우, 역사 뒤안길로…정재계·시민 '애도 물결'

88 서울올림픽 무대서 국가장 영결식 엄수…파주 검단사에 안치

'민주화·독재자' 공존한 두 얼굴 통치자…역사 숙제 남기고 영면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30일 엄수됐다. 자유민주주의와 번영을 추구했지만, 군사정권의 꼬리표를 끝내 떼어내지 못했던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 그는 정·재계 인사들과 시민들의 애도 속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葬)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진행됐다. 국가장은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에 이어 두 번째다.

영결식에는 장례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 장례집행위원장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등 정부 요인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자리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영결식에 불참했다.

고인의 운구는 이날 오전 9시 서울대병원 빈소에서 발인해 연희동 자택을 거쳐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운구 행렬에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자녀 노재헌·노소영씨 등 유가족이 뒤따랐으며,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6공화국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의원과 김종인 전 위원장 등이 동참했다.

시민들도 노 전 대통령의 노제(路祭)와 영결식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연희동 자택에서 진행된 노제에는 인근 주민과 시민들이 발걸음했다. 영결식장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지를 위해 둘러친 울타리 너머로 수백명의 시민들이 운집하기도 했다.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사저에서 열린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노제를 마친 뒤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운구차량에 놓이고 있다. 2021.10.30/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김부겸 총리는 이날 영결식에서 조사를 통해 "재임 시에 보여주신 많은 공적보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고인이 유언을 통해 국민들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용서의 뜻을 밝힌 것"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김 총리는 88서울올림픽 성공 개최, 북방외교,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토지공개념 도입 등 노 전 대통령의 공적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영결식은 고인을 애도하는 자리이자, 새로운 역사, 진실의 역사, 화해와 통합의 역사로 가는 성찰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김 총리는 "노태우 대통령님이 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며 "고인께서 병중에 들기 전에 직접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만나 사죄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남는다"고 아쉬움을 남겼다.

노태우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노재봉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을 '각하'라고 칭하며 추도사를 읽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6·29선언을 영글어온 시민사회 출현을 확인하고, 동서를 막론한 전방위 외교관계 수립으로 UN 가입 계기를 마련하셨다"고 추모했다.

노 전 총리는 고인을 '시민사회 대통령'으로 기억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1988년 신년사를 통해 정치인에 대한 풍자를 허용한 이후 '물태우' 별명을 얻은 것에 대해 "각하는 시민사회의 출현과 그에 따른 시민들의 능동적 관심이 싹트는 것이라고 판단하셨다"며 "각하께서 '군(軍) 출신 대통령은 내가 마지막이야'라고도 하셨다"고 했다.

이날 영결식장에는 고인의 업적 중 하나인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가수 인순이씨와 테너 임웅균씨가 88 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를 추모곡으로 불러 눈길을 끌었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절차를 거쳐 파주 검단사에 임시 안치된다. 이후 파주 통일동산에 장지가 마련되면 안장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고 노태우 전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이 열리고있다. 2021.10.30/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고인의 생전 평가를 반영하듯 애도와 반발이 교차하는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한 시민단체 회원들은 "광주학살 주범, 노태우 국가장을 반대한다"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라며 반발하자 양측 모두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지난 나흘 간의 빈소도 마찬가지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담도청 상황실장을 지냈던 박남선씨는 지난 27일 빈소를 찾아 "이제 지역·계층·정치세력들이 하나 된 대한민국을 위해서 오늘을 기점으로 화해하고 화합하고 용서했으면 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이 과정에서 부인 김옥숙 여사가 과거 대검찰청에 탄원서를 내고 남편의 추징금 2397억원을 대신 갚았고, 아들 노재헌씨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탄압을 사과하며 부친의 과오를 반성했던 사실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5공 실세'였던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29일 빈소를 조문한 자리에서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에 대해 "내가 반란 책임자인가, 내가 사과할 입장은 아니다"라고 역정을 내는 광경도 연출됐다.

노 전 대통령은 끝내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대한 사과를 직접 전하지 못하고 지난 26일 별세했다. 1987년 직선제로 선출된 첫 대통령이자,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된 대통령.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룩했지만, 수의(囚衣)를 입어야 했던 그는 재평가를 역사의 과제로 남긴 채 뒤안길로 사라졌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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