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박희옥] 날아간 화살은 어딘가에 꽂힌다
- 21-10-25
박희옥 수필가(서북미문인협회 회원)
날아간 화살은 어딘가에 꽂힌다
어릴 때, 우리집은 아침마다 전쟁터를 방불하곤 했었다.
“도시락 챙겼니?’ “차조심 하고 늦게 오지 말고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숙제하고” “인사 잘하고” 엄마의 잔소리로 아침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에 돌아오면 “공부해라. 아버지가 없으니 공부를 잘해야 한다 ” 또다시 잔소리를 하셨다. 저녁에 밥을 먹을 때면 엄마는 내 등짝을 두들기며 “에고 불쌍한 년” 하시면서 울곤 하셨다. 엄마의 힘든 삶이 고스란히 나의 어깨 위로 묻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꼭 잘난 년이 되고 싶었다.
아주 오래된 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아침, 중학교 여름방학이라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아버지는 “우리 막내 딸 방학이니 용돈을 줘야지” 하시며 일어서서 지갑을 꺼내시다가 넘어지셨다. 그것이 나와 아버지의 마지막 대화였다. 6남매를 어깨에 진 엄마의 짐이 가볍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면서도 엄마는 공부방에 간식을 빼놓으신 적이 없다. 큰 오빠가 가정교사였고 우리는 앉은뱅이 책상에서 공부를 했다.
늦은 밤 공부를 끝내면 큰오빠는 라면을 끊여주시곤 했는데. 지금의 인덕션 이라고 해야 하나? 작은 크기의 전기난로 위로 양은 냄비를 올리고 물이 끓으면 라면을 가루채 쏟아 붓고 마지막에 양파와 달걀을 풀면 세상에 제일 맛있는 라면이 된다. 그것을 먹기 위해서 큰 오빠에게 머리를 맞아가면서 책상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의 짦은 인연은 우리 모두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누구도 그 기억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세상에 보일세라 엄마의 인생은 더욱 더 고단하셨을 것 같다.
엄마는 미국에서 나와 함께 살면서도 항상 잔소리 하셨다.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말이다.” “말하고 싶어도 일단은 침 한번 삼키던가 큰 호흡한번 해라”
우리 형제들은 아마 이런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듣고 자랐다. 엄마는 배움이 짧았어도 이미 아신 것이다. 사람이 뱉은 말은 화살과 같아서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 꽂혀서 상처를 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잘난 년이 되고 싶어서 미국까지 와서도 그저 그런 년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아버지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말고 살라는 엄마의 말씀은 내 삶에 긴장감을 넣어 주셨다.
이제 엄마가 돌아가시니 내 마음은 어느새 풀려있나 보다. 다시금 마음의 옷깃을 여민다. 이순(耳順)의 나이에도 나는 아직 귀가 순해지지 못한다. 나는 항상 엄마의 잔소리가 필요한 것 같다.
귀찮던 엄마잔소리 오늘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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