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고용 안 줄인다!" 실증 이끈 학자들 노벨상
- 21-10-11
자연과학 못잖은 인과 입증 기여…정책에도 영향
'준실험·자연실험' 방법론 개척…통념 뒤흔들었다
'최저임금 올리면 고용은 정말로 줄어들까?', '좋은 학교를 다니면 미래 소득도 나아질까?'…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한 질문들이지만 쉽사리 답하기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학자들이 올해의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1990년대 초반 이들 3인의 연구는 우리 사회가 '그냥 그렇다'고 막연히 알고 있던 가설과 속설,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었던 고정관념들을 깨부수도록 도왔다. 바로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이라 불리는 연구 방법을 통해서다.
수상자들은 자연실험 방식을 통해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무수한 데이터들 사이 인과관계를 추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마치 의약학 같은 자연과학처럼 말이다. 수상자들의 실증 연구는 이로써 노동·교육 등 국제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정책을 완성하는 데까지 기여했다는 평가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11일(현지시간) 2021년 노벨 경제학상이 미국에서 연구 중인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카드(캐나다), 조슈아 D. 앵그리스트(미국), 귀도 W. 임멘스(미국·네덜란드)에게 돌아갔다고 밝혔다.
왕립과학원은 이들 3인을 공동 수상자로 선정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들이 "관찰 데이터를 활용해 인과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놨다(answering causal questions using observational data)"는 점을 높이 샀다.
◇인과관계 입증 방법론 이끈 세 학자들
어느 학문이든지 인과관계를 발견해 내는 건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라는 점에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수집한 데이터에서 어떠한 경향성(상관관계)이 발견됐다고 바로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좋은 대학을 나오면 미래 소득이 나아질까?'라는 의문이 있다. 상관 관계가 있다고 간단히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대학은 단지 '명문'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훨씬 좋은 학생을 모집했을 수 있다. 인과관계 입증은 어렵다.
이처럼 경제학, 특히 노동경제학 같은 사회과학에서는 인과관계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자연과학에서 인과관계를 입증하려면 실험실 수준의 엄격한 통제 실험을 거치면 된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윤리상 문제가 되거나 통제 자체가 불가한 탓에 수집한 데이터에서 인과관계를 추출하는 작업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때가 많았다.
◇통념 뒤흔든 실증연구…美정부 최저임금 올렸다
그런데 1993년 10월, 노동경제학을 다룬 데이비드 카드와 고(故) 앨런 크루거 교수의 논문은 이처럼 답답한 현실에 돌파구를 마련했다.
카드 교수는 1992년 최저임금을 올린 미국 뉴저지와, 최저임금을 유지한 인근 펜실베니아 동부의 접경 지역 데이터를 분석해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은 줄어든다'는 기존의 경제학적 상식을 뒤집는 결과를 내놨다.
뉴저지와 인접한 펜실베니아 지역은 주 경계선 안팎이냐가 다를 뿐, 노동시장 여건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최저임금 뿐이다. 그런데 카드 교수가 접경 지역의 패스트푸드점 고용을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 클린턴 정부는 이 발견을 연방 최저임금 인상의 근거로 활용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왜 고용을 줄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지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 폭이 기업의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면, 오히려 노동시장 바깥 인구의 취업 의욕을 고취함으로써 기업이 고용을 늘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유야 어찌됐든 수십년간 지속된 최저임금에 관한 통념은 카드와 크루거 교수의 논문으로 인해 깨지게 됐다.
◇자연과학 같은 실증연구 개척…교육·이민 등 정책 활용
카드 교수의 연구 방법론은 사회과학에서도 자연과학과 같은 실증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고, 이후 경제학에서 실증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해당 방법론은 후속 연구들에 의해 '준실험(quasi-experiments)' 또는 자연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됐다.
왕립과학원은 카드 교수가 개척한 준실험 방식이 특히 조슈아 앵그리스트와 귀도 임벤스 교수에 의해 더욱 진보했다고 평가했다.
1990년대 중반, 두 학자는 자연실험 방법론을 더욱 정교화하고 체계화했다. 이에 따라 연구자가 실험자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개발했다.
예컨대 앵그리스트 교수는 태어난 출생 월은 완전히 무작위적(random)인 요인임에도 태어난 달에 따라 교육 기간이 1년 더 늘어나는 독특한 미국 교육 제도에 착안, 1년 추가 교육을 받은 데 따른 효과(교육 수익률)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좋은 대학을 나오면 미래 소득이 나아질지에 대해서도, 한 명문대에 안타깝게 탈락한 이들과 아주 근소한 차이로 입학한 이들을 비교할 경우, 해당 대학에 들어감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소득 개선 효과 수준을 알아낼 수 있다.
왕립과학원은 "1990년대 수상자들의 연구는 자연연구 방식을 이용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물음에 대해 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라면서 "수상자들의 연구는 서로가 서로를 보강하고 완성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수상자들의 공로는 사회과학적 실증 연구에 혁명을 일으켰다"며 "학계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고 강조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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