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진심, 이제는 한글로"…베트남 엄마의 첫 손편지

"한글 배우기 어렵다요. 한국말 그래서 아직은 잘못해요. 그래도 혜진이랑 종현이 키우려고 열심히 배워요."

조금은 틀린 문법, '요' 자와 '다' 자가 뒤섞이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제법 말 속도가 빨라진다. 말투에는 전라도 사투리도 섞여 있다. 

 

575돌 한글날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오후 전남 장성군 다문화엄마학교에서 만난 무티하짱(25). 한글을 배우는 앳된 얼굴의 '학생'이지만 여섯 살 딸과 세 살 아들을 둔 아이 엄마이기도 하다. 

한국 생활 6년 차인 무티하짱은 한글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매일 다문화엄마학교에서 한글을 쓰고 익힌다. '믿음직한 엄마', '엄마다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다. 

무티하짱은 베트남 하이증성이 고향이다. 학창 시절. 텔레비전을 틀면 유난히 한국 드라마와 영화, 가수들의 음악방송이 자주 나왔다.

TV 속 한국의 모습이 친근해졌을 무렵인 2016년, 무티하짱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한국인 남편을 만났다.

무티하짱은 결혼 전에도 베트남에서 한글학교를 다니며 한글을 배웠다. 그런데도 한국에 오니 어려운 '한글'과 '한국어'가 발목을 잡았다. 

사투리를 쓰는 시어머니의 말은 도통 알아듣기 어려웠다.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뭐라고요?'라며 하루에도 수십번 되물었다가 시어머니에게 미움을 받았다.  

또 장을 보러 가서 직원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반대로 인사했다가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6년, 울고 지쳐 포기하고 싶던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일어섰다. 

"엄마다운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커가는 아이들에게 언제까지나 어눌하고 한글도 못 뗀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고향에서부터 좋아했던 한국 드라마를 몇 번이나 돌려보며 대사를 무작정 따라 읽었다. 사극이고 현대극이고 구분 없이 한글 자막을 동시에 틀어놓고 명대사를 따라 쓰기도 했다.

마침 2017년부터는 장성군에서 운영하는 다문화엄마학교의 초등 교육과정이 개설돼 그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초급반 땐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외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중급반에 들어서는 '보글보글', '빙글뱅글', '살금살금' 등 재밌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료들과 농담처럼 주고받으며 지냈다.

다문화엄마학교와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2019년 말 국적 취득 시험에 응했다. 올해 초 드디어 한국 이름 '이지아'가 적힌 주민등록증도 받았다. 

"한국 드라마 좋아하니까요. <펜트하우스> 이지아 언니 너무 좋아해서 한국 이름 '이지아'로 따라 지었다요. 역할 이름이 '심수련'인데 그거는 받침이 있어서 쓰기가 어려워…"

국적을 취득한 후에는 '애국심'과 함께 자신감이 붙었고 이는 검정고시 준비까지 이어졌다. '이지아'가 된 '무티하짱'은 올해 1월부터 국어와 수학, 사회, 도덕 등 총 6과목을 공부했다.

"엄마니까 초등학교는 졸업해야 돼. 근데 한국말 너무 헷갈린다요. 문제 중에 '틀린 거' 고르는 거랑 '옳은 거' 고르는 거 너무 어려웠어요."

지문조차 읽기 어려웠다. 그럴 때면 번역기를 이용해 밤낮이고 문제를 다시 읽었다.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할 때면 택시기사 일을 하는 남편이 퇴근 후 집에 와 간식과 함께 응원을 건넸고 다문화학교 선생님들도 문제를 이해할 때까지 도움을 줬다.

지난 8월 드디어 무티하짱은 초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그와 같이 공부한 중국, 인도네시아 국적의 다문화 엄마 5명도 함께 합격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무티하짱은 휴대폰 사진첩 속에 저장된 합격증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이제 시작이야. 왜냐면 주민등록증 있는 한국 사람이잖아요? 열심히 한국말 배워서 한국에서 직장도 갖고 자랑스러운 엄마 될래요."

얼마 전 아들 생일 때는 처음 '한글 손편지'도 썼다.

'우리 종현이가 벌써 두 번째 생일이네…네가 태어나던 때도 오늘처럼 참 더웠어.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너무나 고마워… 엄마가 계속 따뜻한 사랑 종현에게 많이 줄거야. 우리아들 많이많이 축하하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예쁜 엄마가 썻어용^^'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더 긴 한글 편지로 보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원래는 한글이 어렵고 속 썩였던 기억 많았어요. 하지만 검정고시 합격하고 나니 의미 남달라요. 더 긴 손편지도 애들한테 써줄 거고… 시어머니가 쓰던 사투리도 배울래요! '뭐라고요?' 안 하고 '알았당께' 할래요!"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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