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최재준] 아름다운 빛
- 21-07-05
최재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아름다운 빛
어머니는
새벽이면 하루의 땀을 어디에선가 빌려오셨다
가난한 살림 새벽잠은 사치
전쟁 치르듯 대가족을 챙긴 후에도
아침이면 지쳐버린 몸으로
호미를 잡고 밭으로 향하셨지
스물네 시간이 모자라
밤이면 어둠조차 꾸어오셔야 했다
가물가물 반딧불 그림자를
한없이 풀 죽이던 다듬이 소리
대들보 흔들며 울리던 고난의 장단
북소리처럼 포근하게 아이를 잠재워 주었지
어려선 몰랐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인생
자식 위해 일찌감치 저당 잡히셨다는 걸
병원에서 나의 맹장을 떼어내던 날
어머니가 왜 그렇게 서럽게 우셨는지
버려도 되는 맹장이니 걱정 마시라 했던 내가 후회스럽다
어머니에게 가불 받은 몸
상채기 없이 건사해야 할 나의 유산인 것을
추억조차 담보로 내주시어 우리들의 이름 알지 못해도
아직 남은 빚이 있는 듯
초등학교 소풍날 싸달라던 김밥 한 번 못 해주어 미안타 하시며
식은 보리밥 도시락에 꾹꾹 눌러주시던 그 날만은
또렷하게 기억하신다
자식에게 모두 퍼주어 마른 가슴으로
나의 등을 토닥이는 편안한 심장의 다듬질
아름다운 빚
사랑으로 이자까지 쳐서 다 갚으시고
구순九旬의 어머니는 이제 이렇게 가벼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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