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여춘] 시애틀 등산로 들머리의 한국정원
- 25-06-13
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전 고문)
시애틀 등산로 들머리의 한국정원
우리 동네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유니버설 스튜디오 뒤편으로 벼랑 같은 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버뱅크 피크’이다. LA의 심벌인 ‘Hollywood’ 사인판 왼쪽 끝자락인데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파르고 거칠다. 그 꼭대기에 ‘지혜의 나무’가 광대무변의 LA 경관을 내려다보며 독야청청 서 있고, 그 옆에는 9·11 희생자들을 추모하려고 누군가가 세웠다는 성조기가 휘날린다.
101번 프리웨이를 따라 LA에 갈 때마다 이 산에 눈길이 간다. 유격훈련 코스 닮은 등산로에서 악전고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버뱅크 피크 동쪽에 그리피스 팍 최고봉인 ‘카헹가 피크’(1821피트)와 할리우드 사인판이 있는 ‘리 산’(Mt. Lee, 1709피트)이 연이어 솟아 있다. 불과 3년전 이 세 봉우리를 한 걸음에 주파했는데 지금은 어림없다. 그 사이 다리 힘이 다 빠졌다.
이들 세 봉우리만이 아니다. 그리피스 팍 안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등산로를 그동안 줄잡아 30개는 섭렵했다. 가장 인기 있는 ‘할리웃 산’(Mt. Hollywood, 1625피트) 트레일은 여남은 번 올랐다. 웬만한 도시만큼 넓은 그리피스 팍의 북쪽 입구가 집에서 4마일 남짓하다. 공기 좋고 뜨겁지 않고 사람들 많지 않은 새벽녘에 한 바퀴 걷고 오면 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리피스 팍 등산로들은 거의 모두 땡볕이 내려쬐는 소방도로다. 거목들이 하늘을 가리고 벽계수와 폭포와 기암괴석과 산정호수까지도 품은 시애틀 산들에 비하면 그리피스 팍은 동네 야산이다. 70대 중반까지 20년간 시애틀에 살면서 매주 토요일 산우들과 고산준봉을 올랐다. 요즘도 따분할 때 시애틀의 멋진 산들을 떠올리면 금세 가슴이 뜨거워지고 맥박도 빨라진다.
시애틀 한인산악회가 14일 시애틀 교외의 스노퀄미 포인트 공원(들머리)에서 20주년 기념잔치를 연다며 창설회원인 나를 초청했다. 마음은 원이로되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탁 트인 공원언덕에 아름드리 통나무 정자가 서 있고, 그 아래에 산악회 회원들이 소나무, 대나무, 단풍나무 등을 심어놓은 미니 한국정원이 있다. 시당국이 인가한 사인판이 당당하게 세워져 있다.
산악회는 시애틀의 인기등산로인 월레스 폴스 주립공원 등산로에 김소월 시비(詩碑) 건립도 도모했었다. 그곳엔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귀를 적은 빛바랜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당국의 주립공원 규제가 너무 까다로워 김소월 시비건립은 남가일몽이 됐다. 다행이 한인밀집 도시인 페더럴웨이에 대형 한국공원을 조성하는 시애틀 한인사회의 숙원사업이 꾸준히 추진 중이다.
총 연장길이가 50마일을 웃도는 그리피스 팍 등산로를 누비면서 이곳이야말로 최상의 한국정원 후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붐비는 ‘할리우드 산’ 트레일은 들머리인 그리피스 천문대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왕복 2.5마일에 ‘베를린 숲,’ ‘티파니,’ ‘캡틴 루스트,’ ‘단테’ 등 지명이나 인명을 딴 쉼터 겸 전망대가 이어진다. 거기에 ‘서울 가든’을 하나 추가하면 안 될까?
그리피스 팍은 총면적이 4,310 에이커다. 같은 도심공원인 뉴욕 센트럴 팍의 5배,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팍의 4배 넓이다. 연간 1,000만여명이 방문한다. 뛰는 사람도, 자전거나 말을 탄 사람도 있다. 샌들을 신은 사람도, 주인을 따라온 개들도 있다. 모두에게 열린 무료공원이다. 이곳에서 매년 이른 봄에 열리는 한국일보의 ‘거북이 마라톤’에도 참가자가 구름처럼 몰린다.
그리피스 팍에서 동포를 못 만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린다. 그리피스 팍이 ‘그리피스 朴,‘ ‘Mt. Lee’가 ‘李 山’으로 착각될 정도다. 한인 등산객들의 쉼터로, 특히 매년 1월1일 아침엔 예전처럼 한인 이민자들이 둥글게 둘러서서 ‘고향의 봄’을 합창하며 향수를 달랠 한국정원이 만들어지기를 고대한다. 그렇게만 되면 나도 지팡이를 짚고 동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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