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의 3분의 1길이 유도로로 진입해 이륙 시도…'취소' 지시받아 급제동

1~3번기 모두 유도로 진입 인지 못해…'기강 해이' 또 반복

미국 알래스카에서 훈련 중 발생한 공군 KF-16 전투기 파손 사고의 핵심 원인은 조종사의 착오 때문이라고 공군이 12일 밝혔다.

공군은 이날 '레드플래그 훈련 참가 전투기 사고 경위' 발표를 통해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3기로 이뤄진 KF-16 편조는 훈련 당시 예정된 활주로가 아닌 활주로에 비해 3분 1가량 길이가 짧은 유도로로 잘못 진입했다"라고 밝혔다.

공군의 조사에 따르면 3대의 KF-16에 탑승한 조종사 4명(1·3번기는 단좌, 2번기는 복좌)은 모두 자신들이 유도로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도로는 주기장에 있는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할 때 이용하는 도로로, 활주로보다 길이가 짧다.

공군 관계자는 "우리 기지와 달리 아일슨 기지는 유도로 폭도 넓다는 점 등이 착오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라며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오인으로 인해 2번기도 1번기를 따라 유도로를 활주로로 착각해 진입했고, 결과적으로 전 항공기 편조들이 유도로로 진입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 공군 관제탑은 KF-16 편조 3기 중 1번기가 유도로에서 이륙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해 2번기에 이륙 취소를 지시했다. 활주 중이던 2번기 조종사는 급하게 정지했고, 2번기는 유도로 끝단을 지나쳐 풀밭 지역에 멈춰 섰다.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기체가 파손됐고, 조종사들도 비상탈출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공군은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외부 연료 탱크 누설 또는 마찰, 외부 이물질의 엔진 진입 등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

사고기 조종사는 전방석은 249시간, 후방석 교관은 1090시간의 KF-16 비행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1~3번기 조종사 모두 아일슨 기지에서의 비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다만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 훈련을 거쳤음에도 조종사들의 착오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돼 공군의 기강 해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지난 3월 포천 오폭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복수의 전투기로 편조를 구성한 조종사들이 무조건 선두기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경향이 재차 확인된 것이기도 하다.

공군 관계자는 "(조종사들은) 수개월 전에 이미 임무 준비를 시작했고 기지 특성, 이륙 절차 등을 다 교육받았고 현지에 도착한 후에도 미국 측 주도로 국지절차를 교육받았다"라면서도 "낯선 환경이고 첫 비행이다 보니 잘못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2, 3번기가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1번기를 따라 유도로로 들어간 이유에 대해 이 관계자는 "조종사의 과실임이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또 짧은 유도로라지만 1번기는 이륙에 성공했고, 2번기도 안전을 위해 급하게 제동하기보다 이륙하는 편이 낫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조종사는 관제사의 지시를 인지한 순간부터는 그 지시를 따르는 것이 최우선으로 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 측 관제사가 유도로로 잘못 들어간 1번기가 이륙하기 전에 통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 측 관제사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는 조사를 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 태평양 공군사령부 주관 다국적 연합 공중전투훈련 '레드 플래그 알래스카'에 참가 중인 KF-16 전투기 3대는 11일 오전 9시 2분쯤(한국시간) 공중전술 훈련을 위해 미 아일슨 기지를 이륙하려 했으나, 훈련 도중 2번기 조종사 2명이 비상탈출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군 사고조사팀과 긴급정비팀 20여명은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편으로 이날 오전 현지에 도착했다. 이들은 미 공군 조사팀과 조종사·관제사 진술 및 사고기 상태 등을 확인해 사고 경위를 세부적으로 조사 중이다.

이번 사고 원인이 항공기의 기계적 결함이 아닌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공군은 레드플래그 훈련에 계속 참가하기로 했다. 또한 동일 기종의 비행을 13일부로 재개할 계획이다. 이번 사고와 연관된 조종사 4명은 훈련에 참가하지 않고 사고 조사 후 후속 조치를 받을 예정이다.

공군은 "연이은 사고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통렬한 반성과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를 통해 유사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올해 공군은 이례적인 사고를 연이어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 6일 공군 KF-16 전투기 2대는 경기 포천에서 시행된 한미연합훈련 중 민가에 MK-82 공대지 폭탄 8발을 투하하는 대형 사고를 냈다. 이 사고의 원인은 조종사의 좌표 입력 실수와 확인 부족으로 드러나 기강 해이 문제가 불거졌다.

또 지난 4월 18일엔 공군 KA-1 공중 통제공격기가 야간 훈련 중 기관총과 연료탱크 등 무장을 실수로 지상에 떨어뜨렸다. 이 사고는 조종사가 히터 풍량을 조절하려다 버튼을 잘못 눌러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