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정동순] 고양이 발소리
- 25-05-12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고양이 발소리
토도독토도독. 세상의 소리가 잠잠한 한밤중 어둠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쏴르르 쏴르르. 작은 구슬이 단단한 바닥에 쏟아져 굴러가는 소리다. 소리는 먼저 거실 창문을 치고 후드득 지붕으로 올라간다. 바람에 박자를 맞추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파도처럼 쏴아 몰려왔다 몰려간다. 눈을 감고 가만히 소리에 집중하면 몸피가 작은 짐승이 우르르 지붕 위에 내달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거꾸로 뒤집힌 자루에서 좁쌀이 쏟아지는 소리 같기도 하다. 빗방울이 자기들끼리 한바탕 신나게 어울려 화음을 만들어 낸다. 빗소리는 계획되지 않은 한밤의 랩소디다.
<시애틀라이트 랩소디>라는 글의 일부다. 내가 이 글을 다시 소환해 보는 이유는, 눈을 감고 가만히 소리에 집중하면 ‘몸피가 작은 짐승이’ 우르르 지붕 위에 내달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라는 표현 때문이다. 원래 이 부분은 ‘작은 고양이가’라고 표현했었다.
이 글을 가지고 문우들과 합평회를 할 때, 어떤 이가 말했다. “고양이를 키워 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이야. 고양이는 달릴 때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나는 어렸을 때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있다. 발소리가 어땠는지는 자세히 생각나지 않고, 조용조용 다닌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그분의 지적이 정말 맞나 했다.
얼마 후, 고양이를 키우는 다른 문우가 그 글을 읽고, 고양이는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다시 지적해 주었다. 그제서야 나는 표현을 고쳐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그제서야 ‘고양이’를 삭제하고 ‘몸피가 작은 짐승’으로 표현을 바꾸었다.
얼마 전, 어떤 문예잡지에서 좋은 글로 선정되었다는 수필을 읽었다. 호미에 관해 쓴 글이었는데, ‘호미로 쑥을 캤다’고 했다. 나는 글쓴이가 쑥을 캐 보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쑥을 캐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캐다’라는 동사를 쓰지만, 쑥은 뿌리를 뽑아 캐는 것이 아니고 줄기 부분을 칼이나 손으로 잘라내어 채취한다. 잘 쓴 글이라고 칭찬받았더라도 작은 사실 관계가 어긋나면 글 전체의 신뢰도가 확 낮아진다.
때로는 직접 경험한 일을 써도, 그럴 리가 없다고 믿어주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나도 문우의 글에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벚꽃이 만발한 5월 축제에서 남자 친구와의 만남을 묘사한 부분이 있었다. 내 경험과 상식에 비추어 벚꽃은 4월 초순이면 다 지는데 글쓴이가 혹시 착각한 것은 아닐까 했다. 상대방은 분명히 자신이 경험한 일인데 그런다고 억울해했다. 나중에 5월에 활짝 핀다는 왕벚꽃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나도 처음 알았다. 5월에 피는 벚꽃도 있다는 것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이러리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가지는 일에서 오류가 생긴다.
한편,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 경험을 통해 사물의 이치나 본질을 다 알았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호미로 쑥을 캤다는 사람도 경험 미숙으로 진짜 그랬을 수 있다. 잘 알지 못하고 그런 의견을 낸 일은 아쉽지만, 독자의 관점에서는 글의 사소한 부분에 오류가 느껴지면 글 전체의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독자가 오독하지 않도록 표현을 세밀하게 하는 방법을 궁리해 볼 수 있겠다.
원통 모형을 상자 안에 두고 각기 다른 방향에서 빛을 비추면 그림자는 원으로 보일 수도 있고, 직사각형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같은 물체를 두고도 내가 봤다니까! 원이 틀림없어. 직사각형인데 왜 그래? 당신이 틀렸어, 하면서 날카롭게 각을 세워 다툰다. 정작 두 주장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본체가 원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는 드물다. 지혜로운 이는 두 주장을 잘 들어보고, 그 두 주장 중 어느 하나가 틀렸다고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본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사람일 것이다.
사회가 양극화되어 오늘날처럼 갈등이 심한 때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시대에 고양이의 발소리처럼 내가 오해하고 있는 일은 수없이 많으리라. 이럴 때, 항상 생각을 뒤집어 반대편의 논리로 그들의 변호인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도 고양이 발소리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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