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윤석호] 출렁거리는 문

윤석호 시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출렁거리는 문

 

길을 간다 가로수 펄럭이고 문이 늘어선 길을 간다 신호등이 막아서면, 전화기를 열고 길을 만들며 간다

열려 있는 문들을 지나 초인종을 누르면 반갑게 열리는 문들을 지나 열쇠 말고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문의 안쪽은 쓸쓸하다 좁은 길에 거대한 문을 주차해 놓고도 무수한 문을 허공에 또 매달고 있다 문이 빠르게 증식하자 사람들은 길을 가다 자주 문에 빠진다 

길 위에서 서성거리던 날, 들고 있던 꽃다발이 담쟁이처럼 뻗어 사방의 벽을 다 가리도록 열리지 않던 그녀의 문, 그녀조차 몰랐던 자신 속의 문을 힘겹게 열어주던 그녀는 나조차 몰랐던 내 속의 문 앞에서 뒤돌아섰다

길은 문으로 시작해서 문으로 끝난다 열려고 하면 갑자기 완강해지는 문,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길은 익숙하게 안으로 흘러 들어가 또 다른 문 앞에서 다시 출렁거리고 문 안쪽에서 찾고 싶었던 것들은 어느새 다음 문의 안으로 옮겨가 있다 내가 찾고 싶었던 그녀는 늘 문 안쪽에 있었고 그녀도 내가 열어준 문보다 숨기고 싶은 문에 집착했다

길이 문의 이유이듯 문도 길의 습관이지만 쉽게 상대에게 길들지 않는다 

나는 늘 문 앞에서 망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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