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안문자] 아름다운 두 여인
- 21-06-28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아름다운 두 여인
남편은 젊은 시절 삼총사처럼 밀려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가 이민 오는 바람에 삼총사는 해체되었지만, 우정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충격을 받고 슬퍼하다가 그에 대한 재미있는 추억을 들려주었다.
너무 점잖아서였을까? 연애를 못하던 그는 여러 번 선을 보았다. 선을 볼 적마다 몰래 와서 좀 봐달라는 부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또 선을 본다며 명동의 무슨 다방으로 와달라고 했다. 둘은 즐겁게 숨어있었다. 드디어 후보자가 나타났다. ‘어? 어, 추....축구선수잖아. 야, 가자. 이번에도 아니다.’킥킥대며 두 번 다시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듯 휑하니 다방을 나왔다.
후에 첫 만남의 결과를 궁금해하며 ‘설마, 아니지?’하고 물었지만 친구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잊고 있었는데 청첩장이 왔다. 어떤 여자와 이토록 빨리 진전이 됐을까? 봐달라고 하지 않은 걸 궁금해하며 결혼식장으로 갔다.
아니 이럴 수가! 면사포로 살짝 가린 신부는 바로 그 듬직한 여성이었다. 신랑을 바라보며 표정관리 때문에 진땀이 났단다.
아, 그런데 알고 보니 신부는 진실하고 따뜻한 여성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뜻밖에도 봉사가 삶의 일부가 되어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보육원이나 호스피스, 노인을 돕는 일에 직접 봉사는 물론 필요한 곳에 기부도 아낌없이 하는 여성이었다. 남편은 어쩌다 알게 된 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데 꼭 믿음 좋은 크리스천 같아’라고 말했다.
본인뿐 아니라 부모님과 형제들도 모두 어두운 세상 한 모퉁이를 밝혀주는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니 또 한 번 놀랐다. 평소 사려 깊고 신중했던 그 친구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는 ‘질그릇에 담긴 보배’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그들이 이룬 가정은 그녀의 착한 성품대로 행복했고 슬하의 두 자녀도 엄마를 닮아 훌륭하게 자랐다. 이제 쓸쓸하게 혼자 남은 이 사랑의 천사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섬김의 삶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가 넘쳐나게 되리라 믿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려서부터 따르며 좋아하던 선배언니가 있다. 미모에 지성을 겸한 선배는 피아노도 잘 쳤다. 게다가 목소리는 마치 구술이 굴러가듯 맑았다. 그 집은 한복에 쪽을 지은 할머니 어머니 등 대가족이 화목하게 살고 있었는데 모두 친절했다.
나는 뒷마당이 보이는 마루에서 장조림과 계란말이, 뭇국 등 정갈하게 차려진 점심을 자주 먹었던 일도 잊지 못한다. 특히 눈을 떼지 못한 것은 새까만 비로드로 씌워 있던 피아노다. 어쨌든 그 집의 모든 것이 내겐 부러움이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나를 부러워하는 게 있었다. 그녀가 아기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기억을 못한다며 우리 아버지가 부럽다고 자주 말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첼로를 하는 친구의 연주에 맞춰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같이 불렀는데 아버지가 그 언니의 어깨에 손을 얹고 노래를 함께 불렀다. 노래하는 멋쟁이 아버지가 계신 네가 무척 부러웠다고 지금도 이야기한다. 선배는 S대학 음대를 졸업하고 은행가 집안의 귀공자 같은 청년과 결혼을 했다.
우리가 이민 온 지 40여 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서로 그리워하며 소식이 오간다. 선배는 말했다. ‘안문자가 보내 준 결혼기념일 카드와 크리스마스카드가 상자에 그득한데 절대로 버릴 수가 없어. TV에 나가서 몇 십년동안 안문자란 후배가 보내준 카드라고 자랑하고 싶어’라고.
그 언니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이민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전도를 하지 못했다. 교회에 가자고 하면 싫어할 것 같았지만 사실은 꼭 교인 같았다. 아니 교인보다 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 가족들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모른 체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가난한 집 어린이에게 무료로 피아노 개인 지도를 해주었다.
그 당시 나도 오랫동안 개인지도를 받았다. 어머니가 적은 레슨비를 부끄러워하며 내밀면 극구 사양하다가 고스란히 내 책가방과 학용품을 사다 준 일도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못지않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언니도 교회에 다녔으면 얼마나 좋을까? 속으로 생각할 뿐 말을 못했다.
하나님은 그런 내 속을 아신 걸까? 우리가 이민 오고 몇 해 후 선배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왔다. 미국에 사는 음악가인 딸이 전도한 것 같다.
안문자에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다며 드디어 세례를 받았다는 전화가 왔다, 세례를 받으며 눈물이 너무 쏟아져 꽃다발로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고 했다. ‘그 순간 가슴이 떨리고 알 수 없는 감동이 나의 전신을 뜨겁게 했어. 그게 뭘까?’ ‘그거요? 성령의 눈물이예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단비예요.’ 나는 너무 감격해서 마구 지껄였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안에서 한 자녀가 되었구나!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새롭게 태어났으니(Born Again)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도 달라질 게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아름다운 두 여인을 사랑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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