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염미숙] 소꼬리
- 25-02-17
염미숙(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소꼬리
무슨 고기를 살까? 진열장 안을 기웃거리다 소꼬리가 눈에 들어온 순간 쿡 웃음이 났다. 갑자기 떠오른 이야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웃어넘기지 못하고 씁쓸한 여운이 도는 이야기는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소설가 이창래가 겪은 일이다.
어느 날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안이 운영하는 푸줏간에 고기를 사러 갔다. 덩치 큰 주인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침내 어머니의 순서가 되었다. 주인은 무엇을 원하느냐고 윽박지르듯 버럭 소리를 높였고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준비했던 영어 단어를 말했다. 뭐라고? 재차 질러대는 그의 목소리에 당황한 어머니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 순간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온 말은 ‘소꼬리’라는 한국말이었다. 가게에서 나와 운전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의 참담한 표정을 바라보던 어린 아들은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순간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도 소꼬리의 순간이 있었다. 이민 첫해 맥도널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문을 받는 아가씨가 일이 서툴러 보였다. 내 뒤와 그 뒤 손님의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내가 주문한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내 햄버거는 언제 나오냐고 물었다. 기다리라 하더니 그녀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카운터에 섰다. 다음 사람의 음식이 나오고 슬슬 화가 올라왔다. 그 남자에게 다가가 불만을 말했더니 뭘 시켰냐고 물었다. 다시 음식을 주문했다.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공짜 쿠폰 몇 장과 주문한 음식을 내밀었다. 그 순간 나는 영어로 일침을 가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가게를 나왔을 때 사과도 없던 그들보다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한 내가 더 미웠다. 가게 앞 쓰레기통의 문을 열고 쿠폰과 음식을 몽땅 던져 넣고 문을 쾅 닫았다. 쓰레기통에 괜한 화풀이였다.
조금씩 부당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가던 무렵이었다. 어느 날 환경교통부에서 편지가 왔다. 내 차 번호가 적혀있었고 이 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어느 날짜에 자동차 밖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을 했으니,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작은 책자를 보냈다. 공부한 결과 확인을 위해 질문이 적힌 카드를 동봉했다. 편지를 읽던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마음을 다잡고 편지를 썼다. 먼저 나는 쓰레기를 차창 밖으로 버리는 반사회적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이런 모욕은 참을 수 없다고 썼다. 이 일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다는 것을 명시하고 사과를 요청했다. 두어 달 뒤에 환경교통부 책임자에게서 편지가 왔다. 자신들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 설명하고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글의 맨 마지막에는 책임자의 친필 사인이 적혀 있었다.
그 후 몇 년 뒤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차 장소가 아닌 곳에 차를 잠시 세운 내게 경찰관이 고성을 지르며 손가락질을 했다. 지인을 배웅한 뒤 그 경찰관을 찾았지만, 사라진 뒤였다.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가 민원 담당 경찰관을 찾았다. 그는 노트와 펜을 꺼내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정차 위반을 했다. 그 일로 벌금을 내야 한다면 내겠다. 티켓은 받겠지만, 무례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무례했던 경찰관의 인상착의를 물었고, 내가 답하자 누군지 알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을 받아 적던 그가 말했다. 민원이 효력 있는 절차가 되려면 내 이름과 주소가 필요하다고. 나는 그 경찰관의 이름을 먼저 말해주는 게 순서가 아니냐고 물었고 그는 내 이름부터 먼저 대라고 했다. 그와 나는 버티고 서 있었다. 조용히 서 있던 그가 갑자기 한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더니 내 쪽으로 비스듬히 열었다. Officer Gross! 속삭이듯 말하는 그의 행동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녹았다. 그 경찰관이 어떤 처벌을 받는 것은 원치 않으니, 이런 불평이 있었다고만 그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메시지가 그 경찰관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내겐 소꼬리 순간들이 또 다가올 것이다. 굳이 이민자라는 이유가 아니어도, 동양인이라는 이유, 여자라는 이유로 무례를 겪을 수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도 더해질 것이다. 정중하게, 그러나 사뿐히 날아올라 정곡을 찌르는 말을 준비해야겠다. 부디 사용할 필요가 없는 말이길 바라며.
무례할 필요는 없습니다(You don’t have to be rude). 저한테 화풀이하지 마세요(Don’t take your frustration out on me). 당신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I don’t appreciate your attitude). 선을 넘으시네요(That’s crossing the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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