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문해성] 가짜 뉴스

문해성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가짜 뉴스

 

비상계엄 선포라니? 나보다 일찍 일어난 남편의 말에 가짜뉴스일 거로 생각했다.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특보’로 비상계엄 사태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진짜라고? 순간 심장이 뛰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국회 정문 앞에서는 들어가려는 의원들과 막는 경찰들, 열라는 시민들이 뒤엉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 사이 담을 넘어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모습도 보였다. 국회 뒤뜰에서는 헬리콥터가 군인들을 나르고 있었다. 국회 안에서도 들어가려는 군인과 막는 시민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국회 보좌관들이 테이블과 의자 등 집기를 문 앞에 쌓고 버텨보지만, 문은 열리고 만다. 다급해진 사람들이 무장 군인들을 향해 소화기까지 분사하며 저지하는 모습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밤 10시 30분, 대통령의 기습적 계엄선포는 날벼락이었다. 국회의원 150명이 넘어야 계엄을 해제할 수 있다고 했다.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 사이 갑자기 유리창을 깨고 군인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안 돼’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때처럼. 

새벽 1시가 조금 넘어 국회 의장이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국회의원들이 그때처럼 구세주로 보인 적이 또 있었을까. 안도의 눈물이 나왔다.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도 안도감에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한 밤중에 추위와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 앞에 나와 계엄군을 막아선 그들이 진짜 살아있는 시민이고 애국자라고 생각했다. 

계엄이 해제되고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대통령으로부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3시간쯤 지난 시간 대통령이 나와 이른 시간이라 국무위원들이 모이는 데 시간이 걸린단다. 비상계엄이 내려진 이 엄중한 시간에 국가의 주요 요직에 있는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이른 시간이란 말로 해제가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걸까? 머릿 속을 맴도는 의문이었다.

온밤 뜬 눈으로 국회를 지킨 사람들을 보며 나도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했다. 2024년 마지막 달에 벌어진 계엄이란 무시무시한 뉴스 앞에 많은 것이 사라졌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조용히 한 해를 정리하고 싶었던 마음의 여유는 온데간데없었다. 한국 문학에 자존감을 높이고 기쁨을 주었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도 엄청난 뉴스 앞에 주목받지 못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왔다는 그 감격의 순간을 만끽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 공교롭게도 역사 속 아픔을 소재로 한 작품이 노벨상과 함께 주목받고 있던 시점이었다. 다시 꺼내는 것조차 힘든, 그래서 책 안에서나 기억하고 싶은 조국의 어두운 역사. 그런 비극적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믿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일을 또 계획하고 있었다니.

“데모하지 마라.” 학교 갈 때마다 부모에게 들었던 말이다.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정치 얘기를 꺼내면 “말조심해라, 잡혀갈라”라고 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래서 계엄이란 말만 들어도 불안하고 무섭다. 이번 계엄은 몇 시간 만에 끝났지만, 생중계로 그것을 다 지켜봐야 했던 국민에게는 끔찍한 고문과 같은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지우고 싶은 기억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책이나 영화에서 읽고 보았던 장면들이 오버랩되어 몸이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12·3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 있다. 죄를 지은 자들은 벌을 받겠지만 놀란 가슴에 밤잠 못 자는 시민들은 누가 어떻게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두통과 함께 찾아온 무기력함에 상담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울화통이 치밀고 답답하여 깊이 잠들지 못한 날이 한 달을 넘었다. 그날 이후 힘들다 했더니,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뭘 그리 신경 쓰냐는 반응이었다. 생각하면 그 말이 맞기도 했다. 나 혼자 오지랖을 떨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뉴스 끝에 앵커의 말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오는 것은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DNA이고 우리들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따뜻한 커피 한잔 나누고 싶었다. 어디에 살든 나는 뼛속까지 대한민국 사람인 것을. 설사 그것이 맹목적인 사랑일지라도 마음의 안테나는 늘 조국을 향해있다. 2024년 12월 3일 내가 보았던 모든 일들이 차라리 가짜뉴스였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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