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안문자] 선물
- 24-11-11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선물
"선물은 말로 전할 수 없는 마음의 언어다.“ 선물은 단순히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과 정이 깊게 얽혀 있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마음의 교류이다.
뜻밖의 선물을 받는 날은 종일 즐겁고 기쁘다. 모든 일이 잘될 것 같은 기분으로 삶에 힘이 실리고 풍요로워진다. 선물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고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준 이에게 감사가 깊어진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하고 리본을 매는 손이 춤을 추듯 가볍다. 아무래도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큰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려서 선물을 받고 좋아라, 깡충거렸을 때, 부모님이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실 때, 형제들이, 친구들이, 존경하는 분들이 즐거워하실 땐 얼마나 흐뭇한가?
어느 작가의 글에서 누군가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을 읽은 적이 있다. 꽃바구니에 비스듬히 꽂혀있는 포도주와 귀여운 카드가 살짝 보이는 선물이 받고 싶단다. 작가는 명절 때가 되면 아파트 쓰레기장에 내용물보다 더 크고 요란스러운 장식의 포장상자가 뜯겨 산더미같이 쌓이는 풍경을 보며 쓴 글이다. 인사치례나 청탁용으로, 눈도장으로 오가는 한국의 과장된 선물문화를 한탄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결론은 작은 꽃다발도 부담 없이 주고받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에게 자녀들로부터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가를 조사했다. 한국의 부모들처럼 현찰을 원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자녀들의 전화라는 놀라운 통계도 나왔다. 넓은 땅에 멀리 헤어져 살면서 소식이 없는 자녀들의 소식을 안타깝게 기다리는 부모들의 내리사랑을 자녀들이 헤아리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어머니날이나 생신,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을 받으며 즐거워하시던 모습을 떠올릴 뿐이다. 부모님이 더 이상 물건이 필요 없게 되었을 때부터 우리 형제들도 그랬다. 카드를 펼 때 툭-하고 수표나 현찰이 떨어지면 “아-니 뭐가 떨어지냐? 이런, 언제까지 너희들이 이러간? 고맙구나.” 라며 활짝 웃으시던 그리운 어머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형제들의 흐믓한 미소와 행복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정성이 깃든 선물은 받는 이에게 삶에 활력과 용기를 주고, 사랑받고 있다는 자존감을 높여주고, 소중한 순간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무얼 바라며 준다면 그건 선물이 아니고 뇌물이다.
우리, 안씨네도 선물이 있다.
1993년에 시작한 <안 패밀리 머킬티오 크리스마스콘서트>는 30여 년 전 시애틀 서북쪽의 한 귀퉁이에서 아버지 안성진 목사가 만든 주류사회를 향한 선물이다. 안 씨네의 육남매 가정이 무사히 이어온 이민생활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후손들이 미국의 훌륭한 교육을 잘 받고 꿈을 펼치고 살도록 기회를 준 미국에 고마워하는 안 패밀리의 선물이다. 해마다 무료인 음악회를 감사하며 청중이 답례로 내 놓는 기부는 전액 어려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선물이 된다. 올해에도 27회를 맞으며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있다. 안 패밀리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 감사는 곧 사랑이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려고 애쓰고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며 우리에게 아무 조건 없이 거저 주시는 선물은 나누어 주라는 뜻이 숨어있다. 성 프란시스코의 기도에도 있지 않은가.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게 하여주소서.”라는. 우리는 이 귀중한 선물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생각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50여 년 옆에서 늘 지켜주는 남편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형제들, 멀리서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든든한 아이들이 더없이 귀한 선물이란 생각이 들면 눈물 나게 감사한다. 오늘도 선물로 받은 하루를 좋은 이웃과 다정한 사람들과 더불어 나눌 수 있는 것, 이 모두가 선물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나는 선물의 한 가운데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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