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한혜영 시인 ‘제2회 선경작가상’ 수상했다

‘겨울을 잃고 나는’작품으로…상금 500만원, 12월 시상식

33년 플로리다 살다 지난해 말 시애틀로 옮겨와 작품 활동

한혜영 시인 “지구별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들과 수상기쁨을”

1989년 한국서 등단…지난해 <치과로 간 빨래집게>동시집 펴내


시애틀로 이사를 해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한혜영(71ㆍ사진) 시인이 ‘제2회 선경작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한 시인은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33년을 살다 지난해 말 시애틀로 이주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시 전문지 ‘상상인’과 선경작가상 운영위원회는 최근 심사를 거쳐 한혜영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겨울을 잃고 나는’등 6편이고 상금은 500만원이다.

선경작가상은 문장을 지키는 작가를 위해 작가의 영역을 지키자는 취지로 지난해 제정됐다. 상상인과 선경작가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하고, 선경산업이 주최한다.

이성혁 문학평론가와 이병률 시인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을 통해 “신선한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적 시선을 보여준 작품들이라고 판단했다”며 “동물들과 식물들, 사물들의 세계에 자유자재로 융합하며 시를 생성해내는 시인의 시적 능력이 돋보였다”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심사위원들은 “한 시인은 삶의 다양한 양상을 투시하여 그 깊은 곳까지 드러내며 서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며 “나아가 우리가 사는 당대 사회의 문제를 파헤치고 드러내려는 성실함도 응모작에 대한 신뢰감을 더해주었으며 얼마나 시 쓰기에 전념하고 있는지도 느껴진다”고 강조했다. 

한 시인은 수상 소감을 통해 “동시대에 같은 별에서 만났다는 사실 만으르도 얼마나 눈물겨운 인연인지, 한 세상 살다가는 일에 사람만한 위로가 또 있을까 싶다”면서 “살아있기에 기쁘고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됐는데 지구별에서 만난 내 아름다운 인연들과 수상을 기쁨의 나누겠다”고 말했다.  

수상작은 상상인 겨울호(제10호)에 소개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오는 12월7일(한국시간) 인천 계양구 선경산업 강당에서 열린다.

충남 서산 출신인 시인은 1989년 잡지 ‘아동문학연구’봄호에 동시조로 등단했다. 1994년 ‘현대시학’과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시와 동시를 함께 써왔다.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와 <뱀 잡는 여자> 등 4권, 동시집 4권, 시조집 2권, 장편소설 1권, 장편 동화 11권 등 22권의 책을 펴냈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3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받아 동시집 <치과로 간 빨래 집게>를 펴내기도 했다. 

추강해외문학상 신인상(1997), 미주문학상(2006), 동주해외작가상(2020), 해외풀꽃시인상(2021) 등을 받았다.

 

<한혜영 시인 수상 대표작품>

 

겨울을 잃고 나는

 

나는 흰옷을 걸쳐본 지가 오래된 종려나무, 소금기에 푹 절여진 꼬리를 끌고 해안가를 어슬렁거려요 마음은 죽을 자리를 찾는 늙은 늑대 같기도 하고 조문을 다녀가는 시든 꽃 같기도 하고 찢어질 대로 찢어진 깃발 같기도 하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에요 겨울을 잃은 것들은 다 그래서 혀가 포도나무 덩굴처럼 길어졌어요 살려면 닥치는 대로 생각을 잡고 올라야 해요 아니면 녹아서 줄줄 흐르니까 얼음조각처럼 잘생긴 배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얼굴이 바닥에 질펀해요 뱀은 늘어질 대로 늘어진 혈관을 끌고 서늘한 굴을 찾아가지요

저기서 시곗바늘을 휙휙 돌리는 여자! 아직도 홈쇼핑의 채널을 지키네요 세상에는 없는 계절을 파는, 소매가 긴 스웨터로 감춘다고 감췄지만 손가락을 보니 거미의 종족이에요 땀이라고는 흘릴 줄 모르는, 카펫 가게의 상인처럼 공중에 척척 펼쳐놓는 상술로 하룻밤에도 무성한 계절을 팔아치우지요

늙은 테이프처럼 늘어진 시간 속으로 예고 없는 눈보라가 휘날려요 영하라는 말은 춥디추웠던 옛 연인의 이름, 나는 그리움을 코트 깃처럼 세우고 무릎이 푹푹 빠지는 이름 속으로 들어가요 라라의 노래를 들으며 닥터 지바고처럼 눈이 빨개지면서

눈보라 속에서 만났던, 네 개의 다리 중에서 겨울이 망가진 안락의자는 누가 쓰다가 버린 기호일까요 완벽하게 균형을 상실해 버린, 어떤 감동도 휴식도 줄 수 없는,

저 그런데 말이에요 벽난로가 어떻게 생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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