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여기 지면 끝' 펜실베이니아 표심은…"초박빙, 유권자들마저 부담"

[미대선 D-30] 경합주 내 경합지 '노샘프턴' 표심 팽팽…"두 후보 광고로 도배"

'러스트 벨트' 민심 들어보니, "해리스는 경제 해결 못 해" "트럼프 민주주의의 적"

 

"트럼프와 해리스 중 누구를 지지하냐고요? 나는 누구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미국을 제대로 이끌 후보는 사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본 투표일(11월 5일)을 한 달여 앞둔 지난 3일(현지시간) 찾은 펜실베이니아주 노샘프턴(Northampton) 카운티.

노샘프턴 카운티 내 이스턴시(市) 월마트 앞에서 만난 매트 로스(68) 씨는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소개에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니, 미 대선에 대한 질문에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미국인을 가장 잘 돌볼 사람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여전히 공기 중에 떠다니는 사람처럼 지지자를 정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이어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다"면서도 "해리스는 아닌 거 같다. 물가도 치솟았고 전쟁도 확산하고 있다. 오늘날 일어나는 문제들을 잘 해결할 사람으론 트럼프가 가깝다고 본다. 그는 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올해 55세의 백인 여성 유권자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녀는 "대선 관련 얘기는 입에 담고 싶지 않지만, 트럼프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 들며 민주주의를 헤치는 사람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라고 재차 강조한 뒤 걸음을 재촉했다.

3일&#40;현지시간&#41; 노샘프턴 카운티 이스턴 시내 중심가. 평일 오후라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사진 류정민 특파원> 3일(현지시간) 노샘프턴 카운티 이스턴 시내 중심가. 평일 오후라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사진 류정민 특파원>

 

노샘프턴·이리 2개 카운티 '경합주 내 경합지역'

 

이곳 노샘프턴은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북동쪽으로 약 314km, 펜실베이니아의 최대 도시인 필라델피아에서 북쪽으로 약 107km 떨어져 있다.

인구 32만 명(2020년 기준)의 작은 행정구역인데,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 내에서도 민심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경합주 내 경합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내에는 총 67개 카운티가 있는데,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바뀐 카운티는 이곳 노샘프턴과 이리(Erie) 2곳뿐이다.

이날 기자가 마트 앞, 길거리, 대학 등에서 인터뷰한 유권자 8명 중 2명은 지지후보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고, 나머지는 3 대 3으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가 동률을 이뤘다.

노샘프턴 카운티는 이날부터 이스턴 등 주요 도시에 우편 투표함을 설치했다.

투표함 앞에서 만난 지역언론 종사자 매트 로스(34) 씨는 "펜실베이니아가 이번 대선에서 정말 중요한 지역이 되다 보니 이곳에 사는 유권자들 스스로도 부담을 느낄 정도"라며 "TV와 유튜브 채널 등의 광고도 해리스와 트럼프 두 후보의 광고로 도배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펜실베이니아 내에서도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등을 중심으로 한 도시 지역은 해리스, 두 도시 사이의 농촌 지역은 트럼프로 지역에 따라 극명하게 표심이 갈리면서도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지지세가 팽팽하다"면서 "올해 대선도 아주 박빙의 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3일&#40;현지시간&#41; 펜실베이니아 노샘프턴 카운티 법원에 설치돼 있는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우편 투표함. 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노샘프턴 카운티 법원에 설치돼 있는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우편 투표함.

 

'작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그 안의 더 작은 미국 '노샘프턴'

 

북부의 쇠락한 공업 지대를 일컫는 '러스트 벨트'의 경합주로는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3곳을 꼽는다. 이 가운데에서도 펜실베이니아는 남부 선벨트 4개 주(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네바다)를 포함한 7개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두 차례 대선의 승패가 이곳 펜실베이니아에서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2016년에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2020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두 번의 대선 모두 득표율 1%포인트(p) 안팎으로 승패가 갈리는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48.2%인 득표율로 당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0.7%P 차로 신승을 거둬 당시 20명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갔다.

반면 2020년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49.9%의 득표율로 48.7%의 트럼프를 누르고 선거인단을 독차지했고, 결국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 선거 당일까지도 펜실베이니아를 찾아 유세를 폈는데, 결국 선거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펜실베이니아의 표심이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펜실베이니아는 50개 주가 연합한 미합중국의 축소판과 같은 '작은 미국'의 특성을 보인다.

과거 석유, 석탄, 시멘트 등 공업 원료 산지로 유명했던 펜실베이니아는 철강, 기계, 화학은 중화학 제조업 중심지로 1900년대 중후반까지 영광을 누렸고, 허쉬 초콜릿 공장이 자리 잡고 있는 등 식품 제조업도 발달해 있다. 또 주의 4분의 1가량은 농장 지대로 낙농업도 발달해 있다. 아이비리그에 속해 있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비롯해, 카네기 멜런대, 리하이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등 미국 내 3번째로 많은 대학도 보유하고 있다.

인구는 약 1296만 명(2022년 추계치)으로 미국 50개 주에서 6위에 해당하는, 미국 내에서도 꽤 규모가 있는 주다.

주 내 최대 도시인 필라델피아와 바이든 대통령의 고향인 스크랜턴이 있는 동부 일대,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면서 주의 서쪽 관문 역할을 하는 피츠버그 일대에 인구가 몰려 있다. 미 대륙 동부 대서양 연안에 뉴욕, 보스턴, 워싱턴DC 등이, 서부 태평양 연안에는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등의 대도시가 형성돼 있고 인구가 밀집해 있는 것과 유사하다.

펜실베이니아도 진보적인 노동자 계급이 자리 잡고 있는 도시 지역은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고, 농촌 지역은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다. 

28년 만의 공화당 승리 이후 민주당 재탈환 '엎치락뒤치락'

 

특히 노샘프턴 카운티의 베들레헴(Bethlehem)시는 한 때 세계 최대 철강회사였던 베들레헴 스틸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베들레헴 스틸은 1,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 군함 등에 사용된 철강 제품을 공급한 회사다.

베들레헴 스틸은 195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고 리하이강 유역의 공업지대를 일컫는 리하이밸리(Lehigh valley)의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철강기업과의 경쟁에서 지속해서 어려움을 겪었고 1995년 공장 폐쇄에 이어 2001년 파산신청, 2003년 폐업의 길을 걷는다.

베들레헴 스틸의 폐쇄된 공장은 러스트밸트의 상징이 됐고, 지역경제 기반도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민심에도 변화가 생겼다. 결국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앞세운 공화당이 1988년 이후 무려 28년 만에 승리를 가져갔다.

1960년부터 치러진 총 16차례의 대선을 보면 민주당이 12차례, 공화당은 4차례 승리했다. 특히, 리처드 닉슨(공화당)이 승리한 1968년, 조지 W 부시(공화당)가 당선된 2000년과 2004년을 제외하고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한 후보가 어김없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미 대선의 전체 승부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스윙스테이트로 자리 잡았다.

3일&#40;현지시간&#41; 펜실베이니아 노샘프턴 카운티 이스턴시 소재 라파예트 대학에서 만난 존 킨케이드 사회학과 교수가 2024년 대선과 관련한 지역 표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사진 류정민 특파원> 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노샘프턴 카운티 이스턴시 소재 라파예트 대학에서 만난 존 킨케이드 사회학과 교수가 2024년 대선과 관련한 지역 표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사진 류정민 특파원>

 

'경제·주택가격·낙태권' 순 주요 이슈…"라틴계·흑인 표심이 결과 좌우"

 

그렇다면 노샘프턴 카운티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선 이슈는 무엇일까.

이스턴시에 자리한 라파예트 대학의 존 킨케이드교수는 이(Johg Kincade) 교수는 이날 <뉴스1>과 만나 "현재 이 카운티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이슈는 경제와 주택가격"이라며 "특히 이 지역 주민들은 주택 가격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고 대선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에서는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도 킨케이드 교수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낙태권이 두 번째로 중요한 이슈라는 점"이라면서 "이는 해리스 후보에게 유리한 이슈여서, 선거 결과를 매우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라고 짚었다.

그는 "노샘프턴 카운티는 1912년 이래 1968년과 2000년 2004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선 승자가 승리한 지역이며 이는 펜실베이니아 전체 표심과도 일치했다"라고 설명했다.

킨케이드 교수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필라델피아나 피츠버그 같은 대도시, 반대로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농촌지역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은 몰표를 받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도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그러나 지난 대선의 결과를 비춰 볼 때, 이번 대선에서도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샘프턴에서 이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킨케이드 교수는 "노샘프턴은 백인, 흑인, 라틴계, 아시안, 아랍인 등 인구 구성이 펜실베이니아 전체 인구 구성과 유사하다. 아랍인 인구는 적지만 점점 증가하고 있는 특성을 보인다"라면서 "이번 선거가 매우 박빙인 만큼 라틴계 유권자 일부가 해리스 대신 트럼프에게 얼마나 투표할지, 과거 민주당에 투표했던 흑인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얼마나 투표할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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