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전병두 목사] 네 얼굴이 마치...

전병두 목사(오리건 유진중앙장로교회 담임)

 

네 얼굴이 마치...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온 딸이 엎드려 울고 있었다. 엄마가 조용히 다가가 어깨를 감싸주었다. 

“몹시 아픈가 보다. 어디가 아프니?”

“...” 

딸은 말이 없었다. 한참을 흐느낀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놀렸어요... 내 얼굴이 꼭 프라이팬 같대요...”

엄마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린 딸을 데리고 이민 온 지 몇 달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국을 떠나온 후 그동안 정착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지난 달 첫딸을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갔을 때 보았던 또래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예쁘장한 백인 아이들이었다. 코가 오뚝하고 파란 눈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인형 같았었다. 그 아이들에게 딸이 이런 말을 듣고 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기죽지 않게 기르고 싶었다. 비록 외모는 다르게 보이지만 심성만은 착하고 밝게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다. 피아노도 가르치고 바이올린도 가리켜 자신감도 심어주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자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유치원에 가는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배워 온 영어 노래도 잘 부르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곤 했다. 딸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이민의 삶은 녹녹하지 않았지만 실망하지도 않았다. 제일 걱정했던 것은 자녀들의 장래였다. 백인들과 경쟁해야 하고 언어도 극복해야 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딸과 아들 남매는 씩씩하게 자라가고 있었다. 이 아이들만 잘 자라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버지는 컴퓨터학과를 졸업한 후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전산화 작업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직접 설치해 주었다. 그때만 해도 기업체가 전산망에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필요했다. 이 지역의 주 산업인 목재회사들도 컴퓨터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꾸준히 회사들과 접촉하며 공장의 효율적인 운영, 사원과 고객관리를 위해 컴퓨터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가를 보여주었다. 차츰 반응이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이곳저곳에서 아버지를 찾기 시작하였다. 

유치원을 마친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신감도 성장해 갔다.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선생님의 칭찬도 계속되었다. 예능에도 뛰어났다. 이민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 남동생도 누나 못지않게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피아노를 참 좋아했다. 앞으로 음악을 전공해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속에는 내심 아들이 의사가 되었으면 했다. 외삼촌이 한국에서 이미 유명 의사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무척 더웠던 여름의 열기가 꺾인 어느 날 그 아버지를 만났다. 몇 해 전 무릎 수술을 앞두고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그의 얼굴 한구석에는 그늘이 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모습은 그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걱정스러운 모습은 사라지고 조용한 해면처럼 그의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여든을 넘긴 나이지만 얼굴은 동안이었다. 백발만 아니라면 삼십년은 젊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손에는 전화기가 들려있었다. 

 “우리 딸이 지난 달에는 스페인에 여행을 갔었지요.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와 보스턴 손자 있는 곳에 방문 중입니다. 지금 보스턴에 있습니다. 제 전화기에 그의 행적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지요...”

아버지는 딸과 그 가족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딸은 샌프란시스코의 병원 소아과 과장으로 근무하는 중이다. 일주일에 이틀간만 진료하고 다른 날은 그 지역 소아과 의사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약 250명의 소아과 의사의 대부와 같다고도 했다. 진료 중에 일어나는 문제나, 소아과 병원의 운영 자문 등 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는 듯하더니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이곳으로 이민 와서 딸을 유치원에 입학시켰지요. 어느 날 딸이 유치원에 다녀온 후 울던 때가 잊히지 않습니다. 반 친구들이 자기를 보고 얼굴이 프라이팬같이 같이 코가 납작하게 생겼다고 놀렸다고 울었잖아요. 그 아이가 지금은 소아과 의사가 되어 수많은 아이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소아과 의사들을 지도하고 있으니까요...”

늦여름 오후의 넘어가는 햇살이 아버지의 불그스름한 동안의 얼굴을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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