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전병두 목사] 분가

전병두 목사(유진 중앙장로교회)

 

분가

 

햇살 가득한 오월 초순이다.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듯한 상쾌한 오전에 농장을 찾았다. 벌써 벌들은 앞다투어 햇빛에 샤워하기에 바쁘다. 한가하던 겨울에 비해 문 앞에는 많은 벌이 윙윙댄다. 

“오늘 새 가족이 태어나는 날 일수도 있겠구나...”

정오 쯤 되자 하늘을 덮을 만큼 많은 벌이 벌통 주변을 돌고 있다. 

집 주변 잔디들도 서로 키재기를 하는 듯이 다투어 목을 빼어 하늘을 잡으려고 한다. 차일피일 미루던 잔디 깎기를 더 미룰 수 없다. 잔디 기계에 가스를 채우고 준비를 한 후 돌아보니 벌통 주변에서 날갯짓하던 수없이 많은 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몇 마리의 벌들이 문 주변에서 한가히 움직일 뿐이다. 아마도 한 무리의 벌들이 왕벌을 따라 어디론가 분가해서 나간 모양이다. 

벌이 새 가정을 이루는 적기는 오월이다. 비가 그치고 바람마저 조용한 날이 오면 그동안 집을 지키며 알을 놓아 자녀들을 번식시키던 어미 왕벌은 자기를 따르는 일벌들을 데리고 집을 떠난다. 곧 태어날 새 왕벌을 위해 집을 비워주고 미련 없이 떠난다. 이때 왕벌과 함께 집을 떠나는 일벌은 절반 정도이다. 이것을 분봉이라고 한다.

왕을 따라나선 벌무리는 당장은 멀리 떠나지 않고 집 주변에 자리를 잡고 얼마 동안 숨 고르는 시간을 가진다. 양봉가는 이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어 새집을 짓게 한다. 

일벌들은 주변을 익힌 후 곧 꽃을 찾아 신선한 양식을 빈방에 저장한다. 왕벌은 새집에서 알을 낳기 시작하고 일벌들은 부지런히 새끼 벌들을 보살피기 시작한다. 

왕벌은 하루 2,0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일벌들은 부지런히 꽃을 찾아다니며 겨울이 오기 전에 창고마다 신선한 꿀을 가득히 채운다. 양봉가는 꿀을 채취한 후 대체 먹이로 설탕물을 넣어 준다. 벌은 군집(Colny)을 생명으로 한다. 벌들은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하여 최대한 동료 벌들과 몸을 가까이하여 체온을 유지하고 먹이를 절약한다. 

혹시 식량이 부족하면 벌들은 서로 살겠다고 싸우거나 약탈하지는 않는다. 보관한 식량이 마지막으로 떨어질 때까지 서로 나눠 먹으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한 무리의 벌이 나누어지거나 서로 살길을 모색하지도 않는다.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는 벌들의 모습에서 집단체 생명의 엄숙함을 보게 된다. 

어느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 지난 후 이른 봄에 벌집을 들여다보았더니 벌들이 모여 집단으로 동사하였다. 먹이 창고마다 비어있었다. 춥고 배고파 떨다가 그들은 함께 목숨을 버린 것이다. 그들은 개체를 생명체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식량이 모자라 다른 동료들이 굶어 죽으면 설령 힘센 몇 마리가 생존한다고 해도 결국 자신들도 죽고 말 것을 아는 듯하다. 

오히려 가족 전체(colony)를 하나의 집단 생명체로 여기는 듯하다.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가는 벌들의 세계는 우주 안에 함께 살고있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 원리를 터득한 듯하다. 

무한 생존 경쟁이 아니라 공존의 지혜를 가진 지혜로운 존재이다. 기다리던 봄빛이 집 주변을 비추면 겨울을 버티어 낸 벌들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다. 집주변을 살핀 후 돌아와 봄이 가까이 왔음을 동료들에게 알린다. 

벌들은 봄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이때 양봉가는 비워진 창고에 설탕물을 채워주어 허기를 면하게 해준다. 봄꽃에서 따온 신선한 양식을 먹은 왕벌은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하고 일벌들은 부지런히 새끼 벌들을 보살피기 시작한다. 

알에서 새끼별로 성장하는 과정은 신비스럽다. 대부분의 알은 일벌로 자란다. 극히 일부분은 수벌로 성장한다. 로열젤리를 먹인 알에서는 왕이 될 벌로 성장한다. 대를 이어 왕국을 이룰 소중한 왕의 가문이 이어진다. 

벌들은 인간들의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 각종 과일과 곡식들이 열매를 맺도록 수정시켜 주는 일은 벌들이 도맡는다. 과수원에서는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해 벌통을 빌려오기도 한다. 

우리 집에는 벌꿀을 가정에 상비약처럼 보관한다. 아이들이 고뿔로 기침을 심하게 할 때 따끈한 물에 타서 마시게 하면 열이 뚝 떨어진다. 고된 일을 마친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따끈한 꿀물을 마시면 온몸이 더워지면서 피곤이 가시기도 한다. 

꿀의 주성분인 포도당과 과당은 소화가 필요 없는 단당류로서 체내 흡수가 빨라 피로해소에 그만이다. 입안이 헐었을 때 꿀은 특효약이다.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도 살짝 꿀을 발라주면 곪지 않는다. 

음식은 며칠 동안만 상온에 두어도 상한다. 먹을 수 없다. 그러나 꿀은 상온에 몇 년을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벌은 인류와 함께 공존하는 유익한 곤충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본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서 살아왔는가? 작은 벌 앞에서 자신이 더 작아 보이는 늦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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