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낙태의 자유' 헌법 명시는 어떻게 가능했나

<4일(현지시간) 프랑스 상·하원이 낙태 자유 보장을 담은 헌법 개헌안을 가결하자 파리 에펠탑에 '마이 보디 마이 초이스(my body my choice·내 몸이니 내가 선택한다)'는 슬로건에 불이 들어왔다.> 

 

2022년 美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히며 프랑스에 반향

마크롱 "세계에 메시지 보내는 프랑스의 자부심"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낙태(임신중절)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양원 특별 합동회의에서는 찬성 780표, 반대 72표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프랑스 헌법 제34조에는 '여성이 낙태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은 법률이 결정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헌법 개정안 가결이 발표된 베르사유 궁전에는 오랜 시간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프랑스는 1975년 낙태를 합법화하며 여성이 낙태할 권리를 일찍이 보장해왔다. 당시 자발적 임신 중절을 지지한 보건부 장관 시몬 베유의 이름을 따 '베유 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여성이 임신 10주까지 낙태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후 2001년 임신 12주까지 기간이 늘어났으며 2022년에는 14주까지 연장됐다. 2013년부터는 낙태 수술 시 의료보험을 전액 지원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낙태권을 헌법에 명시하자며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 건 2022년 11월 프랑스의 극좌 성향 정당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가 해당 안건을 제안하면서부터다.

2022년 이전 프랑스 의원들은 이미 여성들이 합법적으로 낙태를 할 권리를 가지며 낙태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기에 굳이 헌법에 낙태권을 명시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2022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과거 1973년 미국에서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자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의 결정은 낙태권이 법원의 결정에 의해 전복되는 장면을 목격한 프랑스인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낙태권을 아예 헌법에 명문화해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야한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기 시작됐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해 낙태권을 헌법에 명시하겠다고 공언하며 개헌에 속도가 붙었다. 프랑스에서 헌법을 개정하려면 상·하원이 합의 후 국민투표를 실시하거나 의회에서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지난 1월 하원을 거친 개헌안은 지난달 28일 상원에서도 통과됐다.

의회에서 개헌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에는 낙태권을 강하게 지지하는 여론이 있었다. 도이치벨레(DW)에 따르면 2022년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IFOP의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86%가 헌법에 낙태권을 명시하는 것에 찬성했다.

국민 여론이 낙태를 강력하게 지지하자 극우 성향의 의원들도 압박을 느끼고 한발 물러섰다. AFP에 따르면 대중의 강력한 지지에 더불어 진보와 중도 성향의 정치인들이 일제히 낙태권의 헌법 명시에 찬성을 표하자 일부 우파 의원들은 변화에 압박을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번 표결에서 극우 성향 프랑스 정당 국민연합(RN)의 의원 91명 중 당대표인 마린 르펜을 포함해 49명이 찬성표를 들었다.

프랑스 헌법은 1958년 제정된 이래 단 17차례 개정됐다. 2008년 마지막 개헌을 진행한 지 16년 만이다. 이로써 프랑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헌법의 수호를 받게 됐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표결에 앞선 연설에서 "우리는 여성들에게 도덕적 빚을 지고 있다"며 "우리는 모든 여성에게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이니 아무도 결정을 대신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전 세계에) 보편적 메시지를 보내는 프랑스의 자부심"이라며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개헌을 기념하는 특별 공개 행사를 열겠다고 밝혔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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