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정(情) 많은 목사님들
- 21-05-24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정(情) 많은 목사님들
(1)영국의 파우셋(Fawcett) 목사가 18세기 말 영국 북부지방 농촌에 있는 웨인스 게이트 침례교회에서 연봉 25파운드를 받으면서 어렵게 목회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런던에 있는 대형교회 카트스레인 침례교회로부터 연봉 50파운드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청빙을 받았습니다.
연봉도 갑절이나 많고, 대도시로 간다는 설레임으로 청빙을 수락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년간 정든 성도들과의 작별이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줄을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막상 그 날이 다가와 이삿짐을 하나하나 마차에 싣는 동안 모여든 교인들의 흐느낌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이란 가는 정이 있고 오는 정이 있는 법. 그동안 파우셋 목사가 얼마나 교인들을 사랑과 정으로 돌보았던지 남녀노소 모두가 울음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년간 사랑을 쏟고 정을 나눈 성도들을 떠나 대형교회로 옮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저 순박한 농민들의 정과 사랑을 외면한 채 마차를 몰고 저들에게 등을 돌린다는 것은 마치 무거운 사랑의 부채를 갚지 않고 도피하는 파렴치한 행위라고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잠시나마 대도시 대형교회를 꿈꾸던 자신의 처신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가족들과 집안으로 들어가 가족회의를 가졌습니다. 회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약 20분 후에 울고 있는 성도들 앞에 선 목사님은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모든 계획을 백지화하고 그 교회에서 정든 성도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여생을 마치겠노라고 선언을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이지적(理智的)으로 생각하고 판단한 모든 일들이, 성도들이 흘린 눈물의 정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던 성도들에게서 함박 웃음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후에도 브리스톨 침례교 신학대학으로부터 학장직 청빙을 받았지만 사양하고 그때의 심경을 시로 남겼는데 그 시가 찬송가 525장 ‘주 믿는 형제들’의 가사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2) 서울 청량리 중앙교회 원로목사였던 임택진 목사는 1950년대 이후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기에도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원로목사입니다. 40년 목회 생활을 끝으로, 당시 70세가 정년퇴직 나이였지만 65세에 조기 은퇴를 할 정도로 사(私)보다는 공(公)을 앞세우고, 노회장, 총회장을 다 역임했지만 거기에 따르는 물욕이나 명예, 직책에 대한 스캔들이 전혀 없이 청빈 속에서 공명정대하게 사신 분입니다.
그 분이 60세 환갑 때 교회에서 선물로 금반지를 드렸는데 그는 그 다음 주일날 그 반지를 교회에 헌물로 바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형편이 쌀 한 되, 밀가루 한 봉지라도 보태줘야 할 가정이 30가정이 넘는데 내가 이 반지를 끼고 어떻게 심방을 다니며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는 성경말씀을 어떻게 전하겠습니까.”
(3) 서울 근교에 있는 어느 교회 P목사는 교인들로부터 설교가 너무 길다는 불평을 받고 있었습니다. 청년들도, 장년들도, 노년들도 모두 불만이었습니다. 드디어 교회 중진들의 건의를 받고 나서야 설교 시간이 10분 단축되었습니다. 그런데 설교 시간은 10분 단축되었는데 광고 시간이 10분 이상 길어졌습니다. 교인들의 불만이 또 이어지자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본심을 실토하시더랍니다.
“사실은 말이야. 내가 예배를 마치고 축도를 한 후 온 성도들이 모두 흩어져 가고 예배당은 텅 비어 있으면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한지 모르겠어.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교인들을 잠시라도 더 교회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랬어.”
이처럼 성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목사님을 어떻게 설교가 좀 길다고 배척하고 광고를 좀 오래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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