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석학 이브 미쇼 “배병우의 사진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현재의 미학적 체제는 ‘과-미학화(hyper-esthétisation)’라는 현상으로 요약

현대 예술은 ‘작품’이라는 사물로부터 벗어나 모든 것을 예술로 만드는 일종의 ‘기체화’된 상태


“사진작가 배병우의 사진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이브 미쇼(Yves Michaud)와 미학자이자 비평가인 최정우 파리 ISMAC대 교수(한국학과)가 2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6구 이브 미쇼의 자택에서 현대 예술에 관한 미학적 논의를 전반적으로 회고함과 동시에 그 시각을 통해 바라본 사진예술과 사진작가 배병우의 작품 세계에 대해 대담을 가졌다.

‘기체 상태의 예술’, ‘예술의 위기’ 등 여러 한국어 번역본을 통해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이브 미쇼의 미학적 논의는 2021년 9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예술, 그것은 완전히 끝났다(L’art, c’set bien fini)’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이브 미쇼에 따르면 오늘날 미학적 체제는 ‘과-미학화(hyper-esthétisation)’라는 현상으로 요약된다. 지금까지 예술이라 불렸던 것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주변 거의 모든 것들이 ‘미학화’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기준에서 근대 예술이 ‘작품’이라는 사물 자체의 유일무이한 아우라(aura:예술에서의 영적 분위기)로부터 가능했던 것이라면, 현대 예술은 ‘작품’이라는 사물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예술로 만드는 일종의 ‘기체화’된 상태, 곧 분위기(atmosphère)와 경향(tendance)으로서 존재하게 됐다. 그러므로 현대 예술은 ‘미학의 승리(le triomphe de l’esthétique)’, 다시 말해 미학 자체가 예술을 대체하는 체제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술은 작가 고유의 영역을 떠나, 한편으로는 미술을 분류 없이 분류하며, 아카이빙 없이 아카이빙하는 미술관, 거대 기업의 미술 재단, 미술 시장 등의 영역에서 더욱 경제화, 금융화됐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SNS나 장소 특정적 예술 행위 등을 통해 어디에나 ‘공기’이자 ‘분위기’로서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사진은 단순 현실을 재현하는 매체가 아닌, 현실 그 자체를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현실은 SNS의 셀카, 자기광고들을 통해 극대화된다는 것. 즉, 사진은 사물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이 아닌, 사진이 포착한 것이 존재의 현실을 규정한다는 의미다. 

이브 미쇼는 "이러한 맥락에서 사진작가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들은 자연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포착된 사진 속에서 재구성된 자연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소나무라는 자연적 사물은 단순히 중립적인 ‘자연’이 아니라 ‘구성된 문화’다. 이 문화가 바로 민족적이며 사회적인 정체성(identité)을 구성한다.

소나무의 이미지는 한국인들과 유럽인들 사이에서 전혀 다른 지각의 방식으로 경험된다. 그런 의미에서 “배병우의 사진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이브 미쇼는 “사진 역시 이러한 의미에서 ‘작품’이라는 사물보다는 ‘분위기’라는 예술적, 사회적 현상으로서 존재한다”며 “배병우의 한국 종묘, 고궁, 왕릉의 사진들, 프랑스 샹보르성의 숲 사진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러한 사회적 정체성의 구성과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미학적 이미지들로 기능한다”고 전했다. 

이브 미쇼는 “우리가 알던 고전적 예술의 상태와 규정은 이미 완전히 끝났다”고 주장하며 예술을 통한 해방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그 대신에 이러한 ‘기체 상태’의 분위기와 경향으로 존재하는 현대 예술의 상황에 대한 미학적 ‘진단’으로 우리의 예술적 행위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를 ‘감지’한다.

 프랑스어로 진행된 이 대담은 사진작가 배병우 작품론을 다루는 책 ‘Bae Bien U: Sacred Wood’의 한 부분으로, 최정우 교수의 번역을 거쳐 국내 옵스큐라(OBSCURA) 갤러리 출판사를 통해 올해 영문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책 속에는 이 대담을 포함해, 명지대 석좌교수 유홍준과 배병우 작가의 대담, 그리고 일본의 미술사가 치바 시게오,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대 교수 로베르트 플렉, 독일 비평가 토마스 바그너 등 석학들의 작품 비평들도 함께 수록된다.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대안 대학인 ‘모든 지식의 대학(Utls)’ 설립자이기도 한 이브 미쇼(1944, 리옹)는 1989년 당시 프랑스의 미술 학교인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 개혁을 위한 자크 랑(Jack Lang) 문화부 장관의 지명으로 프랑스 미술 명문 그랑제콜, 국립고등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콜 데 보자르) 학장(1989~1996)으로 임명돼 정년제 폐지, 커리큘럼 전면 교체, 디지털 개혁 등 대대적 개혁을 단행해 화제를 모았다. 이 외 파리 국립 제1대학(소르본)과 버클리(미국), 에든버러(영국) 등 여러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의 수 많은 저서 중 ’철학 대장간’과 스테디셀러인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나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등 일곱 권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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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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