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
- 24-01-21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4'가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편집자註>
터닝 포인트: 2023년 4월, 보그 필리핀은 106세의 원주민 타투이스트 아포 황-오드를 표지에 내세웠다. 역대 최고령 표지 모델 중 한 명이다.
손가락 한 번만 튕기면 모든 잡티부터 주름, 진실과 약점의 증거까지 디지털 마법으로 지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아름다움은 존재하는 것일까?
체코 모라비아의 스필베르크 성벽 너머로 지는 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젊은 여성들이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캣워크를 걸으며 패션쇼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무더운 낮이 지나고 난 후의 밤처럼 따뜻했던 최근 한여름 저녁의 일이다. 나는 참가자가 아닌 구경꾼이 된 데 아무런 불편한 감정 없이 샴페인을 홀짝였다. 내가 이 곳에 모델 일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완벽해 보일 필요는 없었다.
불편한 하이힐과 무릎을 높이 들고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걸음걸이, 마치 마술 마 장의 말을 연상시키는 듯한 정확한 발 위치, 흠잡을 데 없는 얼굴에 살짝 비치는 땀 한 방울이 눈에 띄었다. 자연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완벽함의 극치였다. 크고 약 간 처진 눈, 작은 코, 도톰한 입술과 완벽한 피부를 창조해 내는 인스타그램 필터가 쇼를 뒤덮고 20개의 완벽한 복제본을 만들어 낸 것만 같았다.
그곳에 존재했던 것은 획일성이었다. 내 눈은 유리 위에 얹어놓은 날달걀처럼 쉽게 굴러갔다. 내가 더 이상 그들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쉰여덟의 나이에 내 휴대전화나 아이패드를 집어들 때마다 나는 밑에서 바라본 내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발 쪽으로 힘없이 처진 피부가 비친다. 노화가 진행 중인 여성에게는 가장 매력적이지 않은 각도다. 그리고서 소셜미디어(SNS) 피드를 훑어보면 매끈한 피부, 살짝 튀어나온 광대, 유치할 정도로 작은 코, 커다란 눈을 가진 완벽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쏟아진다. 잔인한 비교다. 때로는 진짜 할머니의 모습도 섞여 있다. 하지만 실제로 노화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마치 젊은 시절을 살다가 노파가 되어 다시 나타나는 것과도 같다.
인터넷에서는 필터로 싸고 즉각적으로 얼굴을 고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의사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돈과 시간을 들여서 말이다. 온라인 속 노화는 실재하지 않는다. 평범함도 마찬가지다. 그 누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싶어 할까?
글쎄, 일단 나는 그렇다.
자신감이 넘쳐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거의 정반대다. 나는 매일 거울과 아이패드, 반사되는 모든 표면에 비친 내 모습과 싸우고 있다. 주름살, 푹 꺼진 눈, 당장 늘어질 것만 같은 턱살을 보며 “저 여자는 누구지?”하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이런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과 시간은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
나는 열다섯에 모델 일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하는 여성의 원형이 돼야만 했다. 아직 여성이 아닌 소녀였고, 매우 불안했다. 이목구비가 다 자라지도 않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많은 돈을 벌고 오랜 경력을 쌓았다. 여성들은 나와 자신을 비교하고, 나처럼 보이기 위해 내가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하도록 부추겨졌다. 하지만 여성들이 나와 자신을 비교하느라 바쁠 때 나 역시 다른 모델과 다른 여성성의 원형과 비교되고 있었다.
내 결점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말을 듣는 것은 내 직업에 수반되는 일이었다. 무릎이 통통하다는 것, 엉덩이가 너무 호리호리하다는 것, 위에서 보면 코가 오른 쪽으로 치우쳐 있고 왼쪽 눈이 더 가려져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것들은 시작에 불과했다.
완벽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이다. 또한 완벽함은 지루하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 보면 불완전한 요소에 끌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재밌게 생긴 코라든지, 육감적 인 배와 허벅지, 그리고 슬프게도 주름 같은 것들 말이다. 주름은 인생의 지도라기 보다는 피부 상태처럼 보인다.
나는 SNS를 통해 소통한다. 다들 그렇게 하지 않나? 우리는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비교하고 찾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모 습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동경이나 부러움을 느끼고, 이런 감정들은 우리를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만든다.
완벽하다고 평가받던 시절, 나는 부러움 과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비치기도 했다. 나는 다른 모든 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산의 정상에 올랐고, 그곳에서 보이는 경치 가 올라온 데 대한 보상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 경치는 훌륭했다. 하지만 대부분 외롭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내가 손을 흔들면 상대방도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는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그 정도 거리에서는 구분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더 이상 완벽해 보이 고 싶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완벽함은 개인을 고립시킨다. 나와 다른 사람들 을 연결하는 것은 약점이다. 나는 성취보다 실패가 우리를 훨씬 잘 연결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 실패를 공유하고자 한다.
그날 스필베르크 성에서 내 앞에 놓인 런웨이를 걷는 젊은 여성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하지만 누구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이 나 결점이 없었다. 나는 이들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들은 생산라인 위에 놓인 반짝이는 물체들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여성 여러 명의 이목구비를 합쳐 만들어진 거의 완벽한 가상 여성의 이미지를 본 경험을 떠올렸다.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반짝이는 생산라인의 일부가 되기 위해 이 행사에 참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에 관한 에세이 책을 썼기 때문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 책의 집필 요청을 받은 이유는 SNS에서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을 감히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늘어질 듯한 턱살을 들어 올리고 내 얼굴이 더 주름지는 것을 의식하며 미소 지었다. 자신이 이 완벽한 군중 속에서 나이 들어 보이는 노파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패션쇼 무대에서 모든 관심의 중심에 있는 빛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경험과 진실로 조명된 매우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 경험과 진실은 화려함이 사라지고 스포트라이트가 이동한 다음에야 비로소 얻은 것들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상적인 젊은 여성의 원형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마침내 결점과 복잡함을 지닌 내면의 모습 그대로를 보게 되었다. 내 나이는 나를 불완전하게 만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으며 현실적이다. 그것을 왜 굳이 필터로 덧씌우려 하겠는가?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스웨덴 모델 겸 작가, 폴리나 포리즈코바. © 뉴스1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4) |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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