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서로빈] 새해를 켜는 날
- 24-01-05
서로빈(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새해를 켜는 날
오후 4시 30분에 이렇게 어둡다니. 하늘과 해와 달이 원망스러웠다. 콜로라도 북부 포트 콜린스에서 이민의 삶을 시작한 지 석 달째, 처음 겨울 시간으로 바뀌던 날이었다. 그 생경한 감각은 십 년 넘도록 닳지 않고 11월 첫 일요일마다 찾아온다. 고도가 높아 해가 빨리 지던 콜로라도를 떠나며 긴긴 겨울밤과도 안녕인 줄 알았다. 웬걸, 워싱턴은 위도가 높아서 겨울만 되면 또 해가 일찌감치 떨어진다.
지독한 불면증으로 밤새 어둠과 싸우다 매번 졌던 예닐곱 살 무렵, 어둠을 무서워하게 됐다. 일주일 내내 자도 모자랄 만큼 잠이 많아진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어두운 건 여전히 싫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불 안 끄고 자면 건강에 치명적이란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작은 불빛을 꼭 남겨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불을 끈 탓은 아니겠지만, 그 이후로 불면증은 날 잊지 않고 이따금 내 잠을 깨우러 온다.
잠을 못 이룰 땐 처음엔 잠이 오기만을 기다리지만, 결국엔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포트 콜린스에서 처음 몇 해 동안, 겨울이 심해보다 깊고 어두워질 땐 그저 묵묵히 잠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새해를 맞는 순간, 없던 기운이 어디선가 생겼다. 12월보다 1월이 더 춥지만, 아침저녁 점점 환해지는 것만으로 마음은 푹했다. 그래서 아침을 기다리듯 새해를 기다렸다.
언젠가부턴 해가 넘어가지 않아도, 크리스마스만 지나면 벌써 화창함을 느꼈다. 역시 처음 몇 해 동안, 할로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두어 달 왁자지껄 이어지는 동절기 축제 기간엔, 평소에 들추어 보려고 하지 않던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추수감사절을 처음 맞았을 때, 피리 부는 사나이가 사람들을 모두 데려가 버린 듯 휑뎅그렁한 거리 풍경이 무서웠다.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은 추석과 설에는 타지에서 쓸쓸하지 않은지 안부를 물어주었지만, 할로윈이나 추수감사절엔 물어주지 않았다. 추석과 설엔 가게들이 문 닫거나 친구들이 어딘가 가버리지 않아서 쓸쓸하지 않았다. 반면 할로윈에는 이제 시작이라는 긴장감에, 추수감사절엔 지금까지 버틴 만큼 더 버텨야 한다는 피로감에 고달팠다. 그러다 크리스마스에 이르면, 길고 길었던 겨울 명절이 끝난다는 설렘에 쓸쓸할 겨를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즈음엔 추수감사절보다 해가 길어진다.
겨울 해 저무는 시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어렸을 땐 팥죽 먹는 날일 뿐이던 동지의 사전적 의미에 주목하게 됐다.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짓날이 되면 이제 반년 동안 나날이 해가 길어질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신났다. 특히 한국, 혹은 동양에 국한된 문화인 줄 알았던 동지가 전 지구적 절기임을 알고, 내 마음속 동지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 그렇게 마음이 밝아지는 시기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시절보다 무려 사나흘 앞당겨졌다.
몇 년 동안 동지를 오매불망하며 깨달은 게, 실질적으로 저녁 해가 가장 빨리 지는 날은 12월 21일, 동지보다 훨씬 이르다는 사실이다. 알고 보니, 12월 21일은 겨우내 낮 없이 밤만 계속되는 북극에서 조금 아래, 북위 67.4도를 기준으로 해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다. 좀 더 내려와 북위 65도에서는 12월 18-19일, 북위 60도에서는 12월 15-16일에 해가 가장 빨리 저문다. 즉, 위도가 낮아질수록 ‘그날’이 일러지는 것이다. 내가 사는 커클랜드는 북위 47.7도에 자리 잡았고, 이곳과 나의 그날은 12월 10-11일이다.
가을이 시작되면 12월 10일에 마음속 깃발을 꽂고 그날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 더는 폭죽이 터지고 종이 울리는 공식적인 새해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날이 밝아지고 해가 길어지는 순간을 세심히 포착해서 나만의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이윽고 12월 10일이 오면, 스위치를 올려 새해를 켠다. 새해의 불빛을 마음에 들인다. 그리고 달력을 바꿔 건다.
태양력 2024년은 이제야 막을 올리지만, 내 시간의 장은 이미 넘겨졌고 나는 전력을 다해 달리는 중이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대한산악회 15일 토요산행
- 삼성 이재용, 시애틀서 아마존 CEO만나
- “한인상공인 여러분,그랜트나 대출기회 넘쳐요”
- “22일 베냐로야홀서 무료 공연 즐기세요”
- “전주서 열리는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신청하세요”
- 한인학부모회 미술대회서 리아 최,엠마 양 ‘대상’
- 서북미문인협회 20회 뿌리문학신인작가상 공모한다
- 창발 한인들 참여하는 자선기금마련 테니스대회 개최한다
- “시애틀 한인여러분, 호주와 뉴질랜드여행 어때요?”
- 한국학교서북미협의회, 5개 행사 종합시상식 열어(+화보)
- 이번 주말 제74주년 6ㆍ25 합동기념식 열린다
- 재미대한탁구협회 회장배 대회 열린다(+영상)
- 시애틀 통일골든벨 ‘성공’…김환희군 1등 영광 차지(+영상,화보)
- <속보> 오늘 정부납품 세미나서 한인상공인 위한 플렉스 펀드도 설명
- [신앙칼럼-최인근 목사] 기다림의 미덕(美德)
- 오리건 김성주의원 차남 미 공군사관학교 졸업
- “윤혜성 교장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 타코마한인회, KWA‘비지니스 활성화 그랜트신청’돕기로
- 시애틀 한인마켓 주말세일정보(6월 7일~ 6월 10, 6월 13일)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8일 토요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대한산악회 8일 토요산행
시애틀 뉴스
- 애완견 데리고 캐나다 가는 것 어려워진다
- <속보> 지난 주 사망한 유명 워싱턴주 우주인 앤더스 사망원인은 ‘타박상’
- MS-애플-엔비디아 시총 1위 두고 사투…‘시총 삼국지’
- 억울한 살인죄 뒤집어쓰고 23년 복역했지만 "보상은 안돼"
- 시애틀 차이나타운 전 베트남마켓 건물서 화재 발생
- 스타벅스 '단골도 등돌려'...좋은 시절 끝났나
- 시애틀지역 세입자 강제퇴거 소송 빨라진다
- 킹 카운티 홈리스 업무수장 돌연 해고돼 '논란'
- 시애틀고교서 또 총격사망사고 ‘캠퍼스 안전’우려
- 지구사진 찍은 워싱턴주 우주비행사, 소형 비행기 조종중 추락사(영상)
- 미국주택구매 희망자 71% “모기지 인하 기다린다”
- 시애틀서 트레이더 조스 인기 좋다-새 지점 개설한다
- 시애틀에 미국 최대규모 벽화 등장했다
뉴스포커스
- 의대생 유급 막는다…'1학기 미이수 과목' 2학기에 추가 개설
- 보건노조 "우리가 욕받이냐…예약 취소 업무, 의사가 직접 해라"
- "국민연금도 나누자"…이혼 후 '분할연금' 신청 10년새 6.5배 증가
- 오사카행 티웨이항공 11시간 지연…310명 중 204명 출국 포기
- ‘훈련병 얼차려 사망’ 중대장‧부중대장 피의자 소환조사
- '명품백 의혹' 최초 폭로 기자, 경찰 조사 출석 "디올백 돌려달라"
- 박세리 아빠 '3000억 꿈' 날렸다…'서류 위조' 새만금 레저 사업권 박탈
- "'비서 성폭행' 안희정 8347만원 배상"에 김지은 항소…안희정은 포기
- 전북 지진피해 신고 400건 육박…주택·건축물 365건, 문화재 6건
- 동해 가스전 '대왕고래' 시추 예산 확보 난항…산업부 "국회 계속 설득"
- 고도화되는 시리vs빅스비, 누가 더 똑똑할까…'AI 비서 대전'도 뜨겁다
- 인천공항 안에서 테니스 친 커플 "야구도 할 기세, 무개념"[영상]
- '18일 총파업' 동네의원 절반 이상 동참…"후배들 다침에 선배의사 분노"
- 공매도 금지, 내년 1분기까지 연장…"전산시스템 구축 먼저"
- 최재영 "김건희 여사, 대통령 사칭하고 국정농단"
- 유재환 母 "신변 비관 아들, 산소호흡기 떼려고 몸부림…소변줄도 뽑아"